뭐라도 쓰자/단상

[단상] 라파스행 야간버스

멜로마니 2015. 1. 10. 02:18

 

제임스 조이스의 더블린 사람들엔 '마비'된 사람들이 등장한다. 아일랜드의 더블린을 배경으로 감정이 죽어버린, 그래서 섬을 떠나지 못하고 좀비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이 나온다. 여행을 하며 나 역시 그랬다는걸 절감한다.


지난해 서울에서 무미건조한 일상을 보내며 감정도 무뎌졌다. 그나마 살아있던 감정은 '분노'와 '슬픔'이었다. 송파 세모녀 사건부터 세월호 침몰, 윤일병 사건, 압구정 아파트 경비원 분신자살 등 아프고 분노할 일밖에 없던 한해였다. 한국에 살려면 그런 사고와 문제들을 피해 살아내야 한다. 거기서 오는 불안과 강박은 감정을 메마르게 한다. 그래서 사람답게 산다는게 쉽지않다.


한달 넘게 한국과 떨어져 있으면서 죄책감이 들 정도로 행복함을 느끼고 있다. 한국에선 해가 뜨고 지는 모습을 수도없이 봐도 감흥이 없었지만 여기선 지는 석양을 바라볼 때 마음이 벅차오른다. 좋은 사람을 만날 때, 맛있는 음식을 먹을때 등 작은 것에 기쁨을 느끼고 하루종일 마음이 편안하다. 그래서 느꼈다. 여행은 죽어있던 감정을 살아나게 한다는 것을. 그래서 새롭게 살아나는 경험이라는 것을 말이다.


여행을 하다가 한국을 생각하면 답답해진다. 그때마다 지금 이순간에 집중하려 한다. 돌아가서 다시 마비되는 일상이 펼쳐진다 하더라도 열심히 느끼고 경험한 여행의 순간이 피가되고 살이 될거라 생각한다. 처음 남미에 왔을땐 한국이 그리웠는데 이젠 시간이 가는게 너무나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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