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여행은 21살때였다. 아르바이트를 해서 모은 돈으로 40일간 캐나다 몬트리올과 프랑스,독일,러시아를 다녀온 여행이었다. 재즈를 좋아하는 나에게 몬트리올과 프랑스는 행복을 안겨줬다. 그때 만난 뮤지션들은 지금까지 애정어린 마음으로 음악을 듣는다. 독일은 신세계로 다가왔었다. 무뚝뚝해보이지만 조용하고 차분한 사람들과 풍경들, 깔끔한 레이아웃의 잡지와 타이포그라피에 큰 감동을 받았었다. 러시아는 내 유리멘탈이 붕괴될 수 있도록 도와준 곳이다. 삭막하고 무서운 풍경들에 난생 처음 흡연도 해본 곳이다.
여튼 첫여행 이후로 많은 호기심이 생겨났고 그 후에 내가 선택한 길도 달라졌다. 그래서 여행의 소중함을 알게됐다. 어떤 방식으로던 삶의 현재와 미래에 영향을 주는게 여행이란걸 알게됐다. 물론 기분전환 식으로 휴양하는 건 여행에 포함되지 않는다. 진짜 여행은 홀홀단신으로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세상에 들어가는 것이니까.
이번 여행을 하면서 느꼈다. 80살까지 산다고 가정했을때 우린 단 삼개월도 맘놓고 여행할 수 없다는 것을. 먹고 살기 위해선 일을 해야 하고 결혼하고 가정을 꾸리기 위해선 정규직이 되어야만 한다. 그러면서 노예 인생은 시작된다. 죽을때까지 단 삼개월도 내 마음대로 여행해보지 못하고 죽는다. 산다는게 별게 아닌데 참 별건가보다. 먹고 살기위해선 자유를 포기해야만 하는 사회에 살고있다.
마르꾸스와의 여행이 40일을 넘어섰다. 이제 이렇게 긴 여행은 앞으로의 삶에 없을지도 모를거란 생각이 든다. 마르꾸스와 나 모두 그런 생각을 하기에 지금 우리의 여행 순간들은 더없이 소중하다. 함께 새롭고 이상한(?) 세상을 만나고 겪으며 감정을 나누고 서로의 맨얼굴을 쓰다듬는 일이 행복하다. 알랭 바디우가 말했듯 사랑은 두 사람이 구축하는 새로운 세계다. 그 세계를 우린 남미에서 만들어가고 있다.
한국이라는 우물안에서만 지내다가 밖을 나오니 나와 마르꾸스 모두 치장하지 않고 각자 생겨먹은데로 하루하루를 즐겁게 살고 있다. 마르꾸스는 처음으로 한달 넘게 수염을 깎지 않고 있다. 난 한국에선 입어본적 없는 옷도 맘껏 입고 헤어밴드도 쓰고다닌다. 서로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는 일이 즐겁다.
'뭐라도 쓰자 > 단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잡상] 여행잡상 (0) | 2015.01.21 |
---|---|
[단상] 라파스행 야간버스 (0) | 2015.01.10 |
[잡상] 쓸데없는 생각 (0) | 2014.12.12 |
[단상] 악몽 (0) | 2014.12.05 |
누리던 것들과의 이별 (0) | 2014.11.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