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간 갈라파고스에 있으면서 악몽을 여러번 꿨다. 물갈이를 할땐 몸이 아파 악몽을 꿨고 산크리스토발 섬에선 정신줄이 풀리니 과거의 기억들이 꿈에 나왔다. 입시를 치룬 동생이 걱정돼 꿈에 나타나기도 했다.
여러 악몽을 꾸면서 자꾸 밴야민의 말이 생각났다. 자신의 과거를 강압과 고난의 소산으로 바라볼 줄 아는 사람만이 그 과거를 현재의 순간에 최고로 가치 있게 만들 줄 안다는 말. 돌이켜보면 내 스무살 시절이 그랬다. 대학 이름만 쫓아 들어간 학교에서 원하지 않는 전공을 하고 거기서 살아남기 위해 억지로 살았다. 그래서 술만 마셨고 남들에게 휘둘리고 막막함을 지우지 못했다. 그렇게 2년 마음고생을 한 이후론 누가 뭐라하든 내가 좋은쪽을 선택하려 노력했다. 다시 수능을 쳐 불어로 전공을 바꾸면서부턴 이루고싶은 꿈이 하나씩 생겨났다. 난 그래서 좋은 선택을 하는 순간 어떤 느낌이 오는지 잘 안다. 어떤걸 선택한 뒤 맞딱들였을때 막막하고 답이 안나온다면 그건 좋지 않은 선택일 가능성이 높다. 반면 좋은 선택 뒤엔 길이 보인다. 또렷하진 않아도 하나씩 뭔가를 해보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내가 프랑스어를 만났을때가 그랬다. 프랑스에서 대학 생활을 해보고 싶었고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으며 영화를 보고 싶었다. 그렇게 소소한것 하나하나를 이룰때 생각지못한 새로운 꿈들이 생겨났고 내가 원하는 것들은 점점 더 구체화됐다.
이제 대학은 직업양성소가 되어버렸다지만 난 불어를 공부하면서 배움의 즐거움을 알았다. 삶을 살아가는 방식이나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도 불어을 공부하며 더욱 진지하게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이 시기에 만난 인연들은 나에게 더없이 소중한 사람들이 많다.
악몽이야기를 하다 추억팔이가 되버렸다. 가끔 스무살 시절 억지로 견뎌냈던 기억들이 꿈으로 나올때마다 현재 내 삶은 그것을 벗어났음을 느낀다. 이건 그 상황을 벗어나야만 알수있는 감정이다. 이젠 그때처럼 내가 속한 곳에 끌려다니지도 남들과 날 저울질 하지도 않는다. 벤야민의 말처럼 과거는 내 미래를 조각하기 위한 덩어리 그뿐이다. 갇혀있던 좁은 우물 안에서 튀어나와 이제야 진짜 내길을 걷고 있음이 실감이 난다. 악몽, 굿바이!
'뭐라도 쓰자 > 단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단상] 여행자 (0) | 2014.12.31 |
---|---|
[잡상] 쓸데없는 생각 (0) | 2014.12.12 |
누리던 것들과의 이별 (0) | 2014.11.30 |
[단상] 거부할 권리 (0) | 2014.10.17 |
[잡설] 남루하다 (0) | 2014.10.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