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도 해보자/남미순간

과야킬러버

멜로마니 2014. 12. 6. 13:02

새벽 여섯시 사십오분쯤 숙소를 나와 택시를 타고 버스터미널로 향했다. 운좋게 7시출발 버스를 타고 공항엔 아홉시쯤 도착했다. 짐을 부치고 기다리면서 투어를 함께 한 페루 아저씨와 할아버지를 만났다. 어제 저녁 키오스크 거리에서도 봤는데 같은 비행기를 타고 돌아가다니 신기했다. 페루 아저씨는 쿠스코로 돌아갈 예정이라 앞으로 우리 여행에 많은 조언을 해줬다. 와라스는 안전한 편이지만 비도 오고 고산지대라 익숙해지는데 시간이 걸릴거라했고 쿠스코엔 다양한 체험 활동이 많으니 시간을 넉넉히 잡고 여러가지를 해보라고 했다. 쿠스코에서 투어가이드를 해서 영어도 잘하는 안토니오 아저씨다. 리마로 돌아가는 비행기까지 같은걸 타게돼서 참 감사하다.

오전 열한시가 좀 넘어 갈라파고스를 출발한 뒤 두시간에 걸려 과야킬에 도착했다. 과야킬은 에콰도르의 대표적 항구도시다. 리마로 갈아타는 비행기가 다음날 새벽 5시에 있어서 약 15시간정도가 붕 떠버렸기 때문에 전날밤 우린 과야킬 시내 정보를 찾아봤었다. 그런데 정보가 그닥 많지 않았고 치안이 좋지 않다는건 확실했다. 그래서 갈라파고스를 출발할땐 그냥 공항에서 노숙하자했지만 과야킬에 도착해서 인포메이션 센터에 물으니 시내 지도와 버스 운행 정보를 줬다. 인터넷에 누가 25불을 내고 택시를 탄뒤 시내로 들어갔다는 글을 보고 기겁했었는데 버스는 0.5달러로 무지 저렴했다. 또 공항에 짐 보관센터도 있어서 그곳에 10달러를 주고 배낭들을 맡겼다. 그래서 버스를 타고 저녁까지 시내를 보고 오기로 결정했다.

공항 밖을 나오는 순간부터 치안이 좋지 않다는걸 실감했다. 리마보다 경찰도 훨씬 많고 총으로 무장을 하고있었다. 버스를 중간에 갈아타는게 헷갈려서 처음엔 경찰에게 물어보고 그 다음엔 마르꾸스가 한 에콰도르 아주머니에게 여쭤보니 친절하게 함께 버스를 타고 시내 정보도 설명해주셨다. 환승할땐 아주머니가 다른 버스를 타서 대신 에콰도르 아저씨가 내릴 정류장을 말해줬다. 버스를 타면서 영화 중앙역이 생각났다. 버스안은 더운 김이 나오고 사람들로 가득 찼으니까. 살면서 그렇게 만원버스는 처음봤다. 그리고 그 만원버스에 역방향으로 앉아 고기를 썰어먹는 아주머니도 처음봤다. 소매치기가 많기땜에 가방 조심하랴 핸드폰 조심하랴 식은땀나는 버스 탑승이었다. 버스에 사람이 워낙 많아서 내릴 역 전엔 아저씨가 미리 문앞에 서있으라고 소리쳐 말해줬다. 그아저씨 덕에 시내 중심부에 무사히 내릴 수 있었다.

공항 인포메이션 센터 직원 말로는 시내에 볼만한게 이구아나공원과 대성당 그리고 항구쪽이 전부라고 했다. 아저씨가 내리라고 한 역 바로 앞에 이구아나 공원과 대성당이 있어 바로 구경할 수 있었다. 우린 과여킬 시내를 걸으며 이국적인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높은 건물들 사이로 좁은 도로가 있는게 꼭 미국의 대도시같은 느낌을 줬다. 리마와는 다른 풍경이었다. 이구아나 공원엔 이구아나와 비둘기가 어우러져 바닥을 메우고있었고 공원 주위엔 무지무지 큰 나무들이 한그루씩 서있었다. 공원 가운데엔 스페인 식민지에서 독립시킨 영웅인 시몬 볼리바르 동상이 있다. 처음 보는 풍경에 마르꾸스와 난 눈이 휘둥그레졌다.

공원과 대성당을 구경하곤 주변에 점심 먹을곳을 찾았다. 동물적 감각으로 걸어다닌지 5분도 안돼 중국집 치파를 발견. 안에 사람이 꽤 있는걸 보곤 바로 들어갔다. 이곳 간은 너무 짜기 때문에 소금은 적게 넣어달라 부탁하고 새우야채밥과 돼지고기야채밥을 시켰다. 에콰도르는 새우가 무지무지 맛있다는 엄마의 말을 듣고 새우가 들어간 요리를 시켰는데 결과는 대만족이었다. 두 음식 모두 간도 적당하고 매운 소스에 밥을 버무려 야채와 함께 먹으니 환상적이었다. 섬에서 지내면서 야채는 못먹고 기름진 음식으로만 배를 채웠는데 이제야 야채다운 야채를 맘껏 먹어 너무 좋았다. 배터지게 먹었는데 13달러가 나와 기분도 좋아졌다. 이렇게만 계속 먹는다면 한국음식은 생각도 안날것같다.

밥을 먹고선 마르꾸스가 식당 서버에게 여러 질문을 했다. 저녁까지 시간을 때우고 앉아있을 곳을 물어보기 위해서였다. 남자 직원은 산마리노 쇼핑몰을 추천해줬다. 과여킬 북부에 있는 쇼핑몰인데 그 안에 까페도 있고 볼거리도 많다고 했다. 3달러 내고 택시를 타면 갈수있다고 해서 기분좋게 식당을 나온뒤 택시를 타려고 길을 서성거렸다. 모를땐 혼자 어물쩍대는 나와는 달리 항상 바로바로 물어보는 마르꾸스는 길에 있는 에콰도르 가족에게 택시 타는 법을 물었다. 미터기로 계산된다면 바가지를 쓸수고 있기 때문이다. 그때 에콰도르 가족은 친절하게 설명해주고 경찰을 불러주며 택시를 탈땐 꼭 경찰에게 도움을 구하라고 말해줬다. 경찰은 우리에게 노란 택시가 아니면 절대 타지말라고 두세번 반복해서 말하곤 우리에게 택시를 잡아줬다. 그덕에 바가지도 안쓰고 쇼핑몰에 안전하게 도착할 수 있었다.

쇼핑몰은 충격 그 자체였다. 먹을것도 부족하고 단순했던 섬생활을 하다가 대도시의 쇼핑몰을 들어가니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리고 쇼핑몰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굉장히 고급이었다. 총 지하 2층과 지상 3층으로 이뤄져있는데 휴고보스 매장, 스왈로브스키같은 명품 브랜드도 있고 저렴한 가격에 푸드코트도 크게 있었다. 마침 크리스마스 시즌이라 거대한 트리도 있고 볼거리가 가득해서 시간 가는줄 모르고 쇼핑몰 안을 돌아다녔다. 마르꾸스는 남미 여러곳을 가봤지만 이렇게 좋은 곳은 처음 봤다고 했다. 과야킬이 다른 도시에 비해 잘사는것같다는 느낌도 받았다. 사람들이 먹고 쓰는걸 보면 리마보다 풍족해보였다.

저녁은 푸드코트에서 바비큐+볶음밥+감자 샐러드와 지중해 샐러드 그리고 패션푸르츠 주스를 10달러에 배터지게 먹었다. 갈라파고스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에 질좋은 음식을 양껏 먹으니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른다. 둘다 배가 볼록해져서 리마에 안가고 과야킬에 계속 있고싶다고 징징거렸다.

저녁 아홉시쯤 다시 택시를 타고 공항으로 돌아와 짐을 찾고 씻은뒤 잠깐 눈을 붙일 준비를 했다. 이제 어딜가나 공항은 내집같다. 화장실도 깨끗하고 담요하나만 덮고 의자에 누우면 잠도 잘온다. 거기에 수완좋은 마르꾸스가 물 하나를 사고 와이파이 비번을 얻어와 인터넷까지 하며 남은 대기 시간을 보내고 있다.

오늘 과야킬 시내를 간건 즉흥적인 선택이었다. 치안상태가 좋지 않아 걱정을 많이 했는데 다행히 너무 좋은 하루를 보내고 돌아왔다. 아무래도 마르꾸스가 스페인어를 하니 여기 사람들도 하나라도 더 알려주고 친절하게 답해준다. 오늘 도움준 아주머니 아저씨 가족 그리고 경찰 덕분에 과야킬은 우리에게 친절하고 멋진 도시로 기억에 남을 것 같다. 과야킬 최고!!!!

 

+ p.s

공항에서 침흘리고 두시간 잘동안 마르꾸스가 과야킬 정보를 찾아봤는데 여긴 밤이되면 정말 위험한 곳이었다. 작년엔 신혼여행을 온 일본인 커플이 택시강도를 만나 남자가 죽었다고 한다. 저녁 6시 이후엔 여기 사는 사람들도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니 우리가 너무 겁없이 돌아다녔다는걸 뒤늦게 깨달았다. 남미는 위로 올라올수록 위험하니 정신을 바짝 차리고 다녀야겠다. 오늘을 계기로 더 조심하고 다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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