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파고스는 두개의 계절만 있다. 1월부터 6월까진 평균 30도를 웃도는 더운 날씨고 나머지는 25도 정도 되는 그나마 선선한 날씨다. 결국 항상 더운건 어쩔수 없다. 그런데 어젠 처음으로 갈라파고스에 비가 왔다. 항상 태양이 내리쬐서 여긴 비도 안오나보다 했는데 어젠 하루종일 먹구름낀 날씨에 분무기를 뿌리듯 비가 내렸다. 그래서 우산도 안쓰고 섬을 돌아다녔다. 얼굴에 계속 미스트를 뿌리는 기분이었다.
아침은 바다가 보이는 새로운 식당에서 망고주스와 샌드위치를 먹었다. 1.5달러짜리 망고주스를 시키면 겁나 큰 컵에 진짜 망고만 갈아서 준다. 마시고있으면 이게 진짜 주스구나 싶다. 양도 많아서 실컷 먹었다.
먹고나선 어제 빌린 스노쿨링 장비를 반납했다. 여긴 가게문을 여는게 다 들쑥날쑥해서 반납할때 고생했다. 원랜 당일 저녁에 돌려주려했는데 가게문이 계속 닫혀있어서 못주고 아침먹던중 우연히 가게주인을 만나 돌려줬다. 마르꾸스가 오리발 한쪽을 고장내서 수리비를 물으니 70달러를 달라고한다. 너무 바가지라고 생각했는데 마르꾸스가 돈을 계속 깎으니 40달러만 달라한다. 이역시 바가지겠지만 그냥 주자고했다. 여기 사람들은 그냥 훅 던져본뒤 아님 말고식의 방식이라 처음엔 적응이 힘들었다. 숙소 구할때도 달라는대로 주면 절대 안된다. 난 깎는걸 잘 못하는데 마르꾸스는 남미스타일에 익숙해서인지 절대 안속고 요구도 잘한다.
저녁을 그저께 먹은 햄버거집에서 맛있게 먹기 위해 점심은 과자로 때웠다. 커피우유를 사먹어봤는데 너무 맛없었다. 과자는 네슬레에서 나온 웨하스같이 생긴걸 먹었는데 맛있었다. 여기서 그나마 맛있는건 다 다국적기업의 상품이다. 한국에서보다 더 열심히 사먹는거같아 씁쓸했다.
비오는 산크리스토발 섬에서 벤치에 앉아 과자를 먹으며 잡담을 나눴다. 여기오니 마르꾸스와 별별 이야기를 다한다. 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릴때, 배를 기다릴때 등등 기다림의 순간엔 항상 쓸데없는 이야기들을 나누곤한다. 그런데 그런게 참 재밌다.
대망의 저녁식사를 기다리다가 드디어 저녁 일곱시쯤 햄버거가게로 향했다. 사진을 더 잘찍기 위해 마르꾸스는 디에세랄도 챙겨갔는데 햄버거를 찍는 우리를 보자 주인아저씨는 신기해했다. 우리 말고도 독일 사람들이 이 햄버거가게를 찍어갔다하니 우리만 유별난건 아닌것같다. 난 갈라버거 마르꾸스는 갈라파고스버거 그리고 감튀 하나 콜라 두개로 화려한 만찬이 만들어졌다. 양도 많도 패티도 두꺼워서 먹으면서도 배가 무지 불렀다. 배터지게 먹었다는 말이 딱이었다. 햄버거가 나오기전 먹은 감자튀김은 기존의 감튀와는 차원이 달랐다. 여기 감자로 튀겨서 풍미가 남다르다. 더 포근하고 더 착착 달라붙는다. 여튼 배터지게 맛난 식사였다.
너무 많이 먹어서 산책을 했다. 토요일 저녁이라 그런지 저녁 길거리에 사람들이 가득했다. 특이한건 이곳 주민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많다는 점이다. 갈라파고스 제도엔 2만명의 사람이 산다는데 여기 산크리스토발에 사는 비율이 높은편이다. 학교다니는 아이들도 많고 젊은 비율도 높다. 그래서 아이들을 위한 놀이시설도 잘되어있고 공원도 예쁘게 꾸며놨다. 여기와서 요일개념이 없었는데 이날 저녁만큼은 길과 해변에 사람들이 가득해 토요일임을 실감했다.
그리고 신기한건 사람만 많은게 아니라 바다사자도 많다는 점이다. 해변가엔 부슬부슬 내리는 비를 맞으며 바다사자들이 가득가득 누워있었다. 해변가 안쪽 놀이터엔 아이들이 놀고 바로 옆엔 바다사자 오십마리 정도가 누워있거나 수영을 즐겼다. 사람과 동물이 함께 즐기는 토요일 저녁인 셈이다. 동물들을 보며 주말 저녁을 즐기는일은 참 특별했다.
두시간정도 산책을 하고 돌아와 티비를 켰다. 여긴 남미 나라별로 채널이 가지각색인데 재밌는게 없다. 그나마 미국영화가 친숙하지만 이조차 스페인어로 더빙되서 괜히 재미가 없다. 그런데 이날 저녁엔 소울트레인이 방영되는게 아닌가!!! 미국의 옛날 프로가 나오다니.. 신기할 따름이었다. 흑인뮤지션은 나오지 않았지만 내사랑 소울트레인을 남미에서 티비로 본다는게 괜시리 기뻤다. 거기에 밤이 될수록 비도 많이내려 무지 시원하고 기분좋은 밤이었다. 물론 저녁을 너무 과식해서 속은 좀 안좋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