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긴 새벽 여섯시 전만 돼도 대낮처럼 햇빛이 내리쬔다. 거기에다 갈라파고스에 사는 검은 닭들이 연신 꼬꼬댁을 외친다. 그래서 눈을 뜨지 않을 수 없다. 평소 남미 사람들은 게으를거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곳은 해가 일찍 떠서 그런지 다들 새벽부터 일을 하고 가게를 연다. 항상 아침잠이 많았는데 여기와선 알람이 없이도 여섯시에 일어난다.
이 섬은 휴양섬이라 아침식사를 제공하는 가게가 많다. 저렴한 가격에 미국식 아침식사나 남미식 아침식사를 제공하는데 어젠 그걸 사먹었다. 난 볼론 데 깨소라는 감자와 치즈를 동그랗게 뭉친 음식과 커피를 3.5달러에 먹었다. 여긴 커피가루가 테이블마다있고 뜨거운물을 주면 알아서 타먹는 스타일이라 새로운 느낌이 들었다. 처음으로 아침식사다운 식사를 해서 참 좋았지만 갠적으로 볼론 데 깨소는 맛이 없었다. 그래서 과일샐러드를 시킨 마르꾸스꺼를 뺏어먹었다.
아침을 먹고 나와선 왠지 허전해 슈퍼에서 초코우유를 사먹엇다. 여긴 웬만한 음료는 1달러다. 그래서 갈증이 날때마다 사먹곤하는데 아침엔 우유가 땡겼다. 초코가 무지 진하고 겁나 달아서 다음엔 딸기 우유를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여기 음료는 다 무조건 달고 짜다.
이후 스노쿨링을 하려고 일인당 오달러에 장비를 빌렸다. 점심땐 어제 저녁을 맛나게 먹은 식당으로 기서 밥과 생선튀김을 먹었다. 고수가 너무 싫어서 내꺼엔 고수가 들어간 샐러드는 빼달라고 했다. 앞으로 마르꾸스는 음식점에 갈때마다 날 위해 소금과 고수를 꼭 체크하겠다고 했다. 물놀이 전이라 밥을 왕창 먹어뒀다. 이날은 고수를 넣은 스프가 아닌 치킨수프여서 맛나게 먹고 생선튀김도 핫소스를 발라 맛있게 흡입했다.
점심을 먹고나선 어제 다녀온 해변으로 향했다. 또 햇빛에 탈까봐 물놀이용 선크림을 어깨 등에 바르고 모자 챙기고 긴팔을 입고 출발했다. 걸어가는길에 더위먹을까봐 해변까지는 1.5달러를 내고 택시로 이동하니 몸 상태가 훨씬 나았다. 이곳은 햇빛이 너무 강해서 2시간만 걸어다녀도 몸이 축나고 지쳐버린다.
해변가에 와선 빌린 스노쿨링 장비와 오리발을 하고 바다로 갔다. 오리발이 익숙치않고 바위가 많아 나중엔 오리발을 벗고 아쿠아슈즈를 신은뒤 스노쿨링 장비만 했다. 몇번 연습하니 익숙해졌고 바다속이 보였다. 정말 진풍경이었다. 해변에서 몇발자국만 나갔을 뿐인데 온갖 물고기들이 보였다. 마르꾸스는 나보다 더 멀리 나갔는데 바다거북이도 봤다고한다. 난 거북이는 못봤지만 각종 물고기때와 수영을 즐기는 바다사자를 아주 가까이서 봤다. 신비스럽고 황홀한 시간이었다.
두시간정도 하고나니 날씨가 어두워지고 추워져서 다른 해변으로 이동했다. 두번째 해변은 모래사장이라 바위가 없어 편했지만 그만큼 물도 탁하고 물고기도 전보다 없었다. 그래도 어딜가나 바다사자는 항상 있다.
오후 내내 바다에서 보내고 출출해지자 마르꾸스가 특별식을 제공했다. 나몰래 한국에서 가져온 라면밥이었다. 호스텔 옆 까페에서 뜨거운물을 줘 한사발씩 하니 천국이 따로 없었다. 한국 라면은 면발이 남달라 너무너무 맛있다.
저녁엔 밤마실하면서 봐둔 햄버거집을 가보기로 결정. 라면도 먹었기때문에 하와이안 햄버거 하나만 주문해서 나눠먹었다. 이곳엔 고기가 귀해서 진짜 햄버거는 먹기 힘들거라 생각했는데 절대 그렇지 않았다. 두꺼운 패티에 토치로 그을린 치즈, 갈라파고스에서만 맛볼수 있는 새콤달콤한 소스와 파인애플까지.. 우린 한입씩 먹을때마다 천국을 만났다. 그리고 여지껏 갈라파고스에서 못먹고 고생한 일들을 이렇게 보상받는구나싶어 행복해했다.
이날은 갈라파고스에 있는 기간동안 최고로 잘먹은 날이다. 삼시세끼를 여기식대로 맛나게 먹었고 배탈도 안났다. 이제 몸이 많이 적응한 것 같아 행복하다. 그치만 햇빛으로 탄 곳은 여전히 가려워 미치겠다.
아, 이 작은 섬도 크리스마스 준비가 한창이다. 더운날씨에 산타 인형을 보니 참 새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