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나의 힘/영화예찬

[영화/엮어보기] 히치콕의 '레베카' vs 브라이언 드 팔마의 '강박관념'

멜로마니 2013. 2. 27. 22:34

 

 

 

 

 

 

 

 

 

'서스펜스'란 말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영화, 드라마, 소설 에서 줄거리 전개 관객이나 독자에게 주는 불안감 긴박감' 이란 정의가 나온다. 사실 서스펜스는 이런 뜻보다 히치콕을 의미하는 수식어구로 친숙하다. 고전이 되어버린 '싸이코', '새', '현기증', '이창', 그리고 '프렌지'등을 보고있으면 굳이 사전을 찾아보지 않아도 서스펜스가 주는 느낌을 한아름 안게된다. 영화를 따라가다 만나는 긴장과 반전 그 시작이 히치콕이었기에 그의 영화는 시간이 흘러도 큰 사랑을 받는다.

 

여기 또 한 감독이 있다. 미국에서 태어난 그는 대학시절 히치콕의 '현기증'을 보고 영화의 길을 걷게된다. '시스터즈', '캐리', '필사의 추적', '스카페이스', '언터쳐블'  그리고 '칼리토' 등등 다양한 장르에서 재미와 긴장을 동시에 보여준 '브라이언 드 팔마'는 미국영화에서 서스펜스의 최강자가 아닐까 싶다. 그의 몇몇 작품들을 보고있으면 여러 이유로 히치콕을 떠올리게 된다. 스토리에 존재하는 마지막 반전 구조나 과감한 컷, 정적인 카메라 움직임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인 것 같다. 특히 히치콕의 '레베카'와  브라이언 드 팔마의 '강박관념'은 엮어서 보면 비교해서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영화 '레베카'의 경우, 부인과 사별한 남자가 새로운 여자와 재혼을 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있다. 전부인의 이름이 '레베카'였고 영화 속에서 그녀는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웠고 지성을 겸비했던 여인으로 묘사된다. 이런 죽은 전처의 환영아래 재혼을 한 여주인공은 자신이 한없이 작아지는걸 느낀다. '만다레이'라는 대저택에서 '레베카'를 모셨던 하인들에게 비교를 당하기도 하고, 레베카 이야기만 나오면 얼어버리는 남편의 모습에서 여주인공은 자신감을 잃어가고 사랑을 믿지 못하게 된다. 그렇게 둘 사이의 관계는 멀어지는 듯 하다가 밝혀지는 '레베카'의 죽음에 대한 진실! 그 반전에 난 적잖이 놀랐다. 그 반전을 알고 영화를 다시 보면 주인공 남자와 만다레이 저택 속 사람들의 행동이 하나하나 설명이 된다. 죽은 여자에게 비교를 당하고 자신감을 잃는 여주인공. 그리고 그런 여주인공에게 과감히 다가설 수 없는 남자의 비밀. 반전을 몰고가는 디테일한 심리 묘사나 상황설정들이 돋보이는 수작이다.

 

브라이언 드 팔마의 '강박관념'은 납치로 사랑하는 아내와 딸을 잃은 중년남자가 주인공이다. 납치사건이 일어났을때, 자신의 무능력함으로 아내와 딸이 죽었다고 자책하며 살아가는 주인공은 오랜만에 아내와 처음 만났던 이탈리아 플로렌스 지방의 교회를 다시 찾아간다. 그곳에서 죽은 아내와 똑같이 생긴 여인을 만나고 주인공은 그녀와 함께 미국으로 돌아와 결혼을 한다. 하지만 또 사라진 새 아내.. 주인공은 죽은 아내가 자신에게 다시 한 번 기회를 더 주는것이라 생각하며 자신의 죄책감을 씻어낼 수 있도록 납치범이 요구하는 돈을 준비한다. 그리고 여기서 밝혀지는 대반전.. 아 이 반전 역시 진짜 생각 못했다. 그 반전에 대해선 두 영화 모두 쓰지 않겠다.

 

이렇게 '이야기'를 놓고보면 공통분모가 그렇게 많이 보이진 않는다. 전처가 죽고 그리움 속에 혼자 사는 부유한 남자 주인공 설정이 동일한 듯 싶다. 그리고 중간중간 각 영화의 저택 속 전부인의 흔적들이나 초상화도 비슷한 느낌을 풍겼다. 하지만 두 영화는 각기 다른길을 간다. '레베카'의 경우 전부인의 죽음과 그것을 둘러싼 미스테리가 주된 볼거리라면, '강박관념'은 전부인의 죽음으로 생긴 남자주인공의 '강박관념'을 둘러싼 비밀이 극적 요소로 작용한다. 즉, 주인공과 영화 후반 극적인 반전과 같은 유사한 설정아래 서스펜스를 주는 내용과 포인트는 전혀 다르다. 그 차이점을 보고있으면 영국의 히치콕과 미국의 브라이언 드 팔마가 보인다. 엮어보기의 매력이다.  

 

사실 브라이언 드 팔마의 '강박관념'은 히치콕의 '현기증'을 모티브로 만들어졌다. 영화 '택시 드라이버'로 유명한 폴 슈레이더와의 식사중 화제가 된 영화 '현기증'을 바탕으로 브라이언 드 팔마는 현기증을 새롭게 변형한 작품을 구상하게 된다. 그 작품이 바로 '강박관념'이다. 그래서 각본역시 폴 슈레이더가 맡았고 촬영은 '환상 속의 사랑', '슈가랜드 특급'을 찍었던 헝가리 출신 빌모스 지그몬드가 맡았다. 그리고  '싸이코',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등 과 같은 히치콕의 대표영화들의 음악을 맡은 버나드 허먼이 음악감독이다. 영화를 이루는 스탭만 봐도 히치콕을 오마주한 브라이언 드 팔마의 의도가 보인다. 브라이언 드 팔마는 '현기증'에서 중심을 이루는 '강박관념'을 차용해 그의 영화속에서 또다른 '강박관념'을 보여준다. 그래서 영화 '강박관념'을 보고있으면, 레베카의 구조와 인물설정 그리고 현기증의 메인소재인 '강박관념'이 떠오르게 된다. 한 영화를 보면서 그만의 은어로 표현된 다른 영화들과의 연결점 찾기. 그게 영화를 보는 또 하나의 매력이 아닐까 생각해본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