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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로제타(1999) - 장 피에르 다르덴, 뤽 다르덴

멜로마니 2014. 1. 11. 15:52



로제타 │ 장 피에르 다르덴, 뤽 다르덴 │1999



로제타는 살아있는 영화다. 그래서 괴롭고 가슴아픈 영화다. 하지만 그럼에도 마지막엔 희망을 안겨주는 작품이다. 영화를 보는 순간 우린 외롭고 고된 인생을 꾸역꾸역 살아나가는 주인공 소녀 '로제타'와 함께하게 된다. 그렇게 1시간 30분간 그녀와 함께하면 왜 이 작은 소녀는 그렇게 차가운지 그리고 그녀의 눈빛은 왜이리 황량한지 조금은 알 수 있다. 영화 속 로제타의 희망없는 힘겨운 인생이 관객인 나에게까지 전해졌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나에게 희망을 보여줬다. 그래서 그녀가 보여준 희망의 빛을 여기에 담고 싶다.


영화는 로제타가 한 회사에서 쫓겨나는 것에서 시작된다. 알콜 중독인 어머니와 작은 캠핑카에서 사는 로제타는 일자리를 잃고 또 돈을 벌기 위해 곳곳을 전전한다. 하지만 마땅한 일도 없어 가진 옷을 팔아가며 생활비를 마련한다. 경제적 문제에 더해 알콜 중독인 어머니에게서 벗어나고 싶지만 쉬운일이 아니다. 그러던 중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와플 노점에 들린 로제타는 그곳에서 일하는 또래 남자아이를 만나게 된다. 이후 남자아이의 도움으로 간신히 일을 얻지만 이 역시 사장의 불합리함으로 끊기고 그녀는 다시 절망한다. 안정된 일자리와 돈이 간절한 로제타는 자신에게 도움을 줬던 남자아이를 이용해 일자리를 빼앗기에 이르지만 이후 자책감을 느낀 그녀는 모든 것을 그만둔채 캠핑카로 돌아온다. 그리고 술에 취한 어머니와 함께 가스를 틀어놓고 죽음을 기다려보지만 가스비가 없어 자살마저도 실패한 로제타. 마지막으로 캠핑장에서 가스를 사오며 터덜터덜 걷는 길, 그녀는 처음으로 표정이 변해 있다.


핸드 헬드로 주인공의 뒤를 쫓는 듯한 생생한 느낌을 주는 이 영화는 러닝타임 내내 로제타의 삶을 관찰하는 인상을 풍긴다. 일자리를 구하고 알콜 중독 어머니를 보살피는 과정은 아직은 앳된 소녀가 감당하기엔 너무나 무거워 보인다.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을 말로 거의 하지 않는, 그리고 친구도 없는 그녀에게 와플 노점의 남자아이는 중요한 전환점이 된다. 처음으로 누군가가 자신에게 관심을 가지고 도움을 주는 것을 경험한 것. 익숙치 못한 관심과 배려에 그녀는 뒷걸음질 치지만 어느틈엔가 로제타 역시 변하길 원하고 있다. 끔찍한 캠핑장과 엄마를 떠나고 싶어하는 로제타에게 와플 노점의 남자아이는 하나의 빛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녀의 삶은 그렇게 쉽게 변하지 못했다. 캠핑장에서의 삶조차 유지하기 어려운 그녀에게 보다 나은 삶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헛된 꿈일테니 말이다. 끝없이 구석으로 몰리는 로제타는 결국 남자아이를 버리고 돈을 택한다. 감정없이 텅 빈 눈의 로제타를 바라보며 남자아이는 원망을 쏟아내지만 그녀의 삶은 이미 타인을 생각하기엔 너무나 지쳐있다.




하지만 영화 마지막, 로제타는 변화한다. 남의 자리를 뺏어 돈을 벌기 시작한 그녀가 갑자기 일을 그만 둔 것. 거기에 로제타는 더 어려운 결정까지 한다. 답없는 인생에 지친것일까, 그녀는 어머니와 함께 캠핑카 문을 걸어잠그고 가스자살을 시도한다. 하지만 가스가 없어 그마저도 실패한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 씬은 가스를 사서 캠핑장으로 돌아가는 길을 담아낸다. 날 흔들어놨던 부분도 바로 이 씬이다. 죽기 위해 무거운 가스통을 짊어지고 걸어가는 그녀에게 오토바이를 타고 나타난 남자아이. 로제타를 빙빙 돌며 따라다니지만 그녀는 어느순간 울며 쓰러진다. 그리고 일으켜세워진 그녀의 눈은 뭔가 달라져있다. 분명 달라져 있다. 영화 내내 희망 없는 텅빈 눈으로 세상을 바라봤던 로제타가 아주 조금씩 눈에 감정을 담아내기 시작한 것. 상기된 그녀의 얼굴엔 남자아이를 향한 원망이든 혹은 고마움이든 왠지모를 감정이 담겨있다. 혹시 그녀는 자신에게 손을 내밀어준 사람을 통해 삶에서 느끼지 못했던 따뜻함을 느낀 것이 아닐까. 그리고 죽으려 다짐한 순간, 또다시 자신 앞에 나타난 그에게 마지막 희망을 발견한 것이 아닐까. 


영화는 그렇게 로제타의 상기된 얼굴을 보여주며 끝이난다. 그 상기된 얼굴이 의미하는 건 보는 사람들마다 다르게 다가올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 그 표정은 로제타의 어떤 표정보다 안아주고싶은 얼굴이었다. 차갑고 무서운 세상 속, 의지할것이라곤 자신밖에 없던 그 힘겨운 세상에 들어와 손을 뻗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그녀의 인생이 계속될 것만 같은 느낌도 전해준다. 경직되고 굳어있던 그녀의 얼굴이 조금씩 상기된 그 순간, 무언가를 말하려 하는 그 순간 영화는 끝이 나지만 난 아직도 그 지점에서 멈춰있는 것 같다. 아니, 그 찰나의 순간이 좋다. 그것은 타자를 통해 고통을 나눌 수 있는 시작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모든걸 포기한 그 순간에도 붙잡아 준 누군가가 있다는 건 그래도 삶은 희망이 있다는 증거일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