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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내인생의영화] 파란대문(1998) - 김기덕

멜로마니 2013. 12. 16. 17:04



파란대문 │ 김기덕 │ 1998 │ 이지은. 이혜은 



유년시절 나에게 '영화'는 'TV'와 같은 느낌으로 다가왔었다. 시험이 끝나면 습관처럼 영화관으로 달려가 개봉영화들을 봤다. 그시절엔 어떤 영화를 보는지는 그닥 중요하지 않았다. 유명한 스타가 나오거나 화려한 포스터에 이끌려 영화를 선택하고 시간을 때웠다. 어쩌면 영화를 보며 릴렉스되는 기분, 거기에 더해 맛있는 팝콘을 먹는 맛으로 영화관을 찾아간 것 같다. 늑대의 유혹, 그놈은 멋있었다와 같은 말도 안되는 영화들을 보러다녔으니.. 그때 영화는 나에게 시각매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던 것 같다. 유년시절 본 영화 중 지금까지 기억에 남는 건 손에 꼽을 정도니 말이다. 


하지만 '파란대문'은 달랐다. 고등학교 2학년무렵, OCN에서 늦은 밤 해주던 이 영화에 완전히 마음을 빼앗겨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성에 눈뜨기 전 본 이 영화는 나에게 두 가지 느낌을 가져다줬다. 먼저 창녀인 주인공 진아(이지은)에게 가해지는 성적인 폭력들이 하나의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영화 후반 혜미(이혜은)와 진아가 친구가 되는 그 과정에선 왠지모를 동질감도 느껴졌다. 하지만 쓸쓸한 해수욕장의 '새장 여인숙'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들은 무엇보다 어린 나에게 두려움과 어두움으로 다가왔다. 한마디로 마주하기 싫은 그런 영화였다.




영화는 파란 대문이 있는 새장 여인숙에 진아가 살게 되면서 시작된다. 매일 몸을 팔며 여인숙에 얹혀 사는 그녀지만 그림을 그리고 하루키의 책을 읽는 23살의 평범한 여자다. 여인숙엔 가족 넷이 살고 있다. 그중 딸인 혜미는 진아와 같은 나이지만 대학생이다. 그녀는 자신과 나이가 같은 진아를 보며 불결하고 더럽다고 생각한다. 혜미의 아버지와 남동생이 진아와 관계를 가지고 성적 욕망을 가지는 걸 봤기 때문에 어쩌면 그런 증오심은 당연한걸지 모른다. 영화 속엔 많은 남자들이 진아에게 접근한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남자들이 진아의 몸을 원한다고 할 수 있다. 그렇게 몸을 팔아 살아가는 진아와 한번도 관계를 가져본 적 없는 혜미 사이엔 너무나 먼 거리가 존재한다. 성적으로 유린당하는 진아에게 연민이 들법도 하지만 혜미의 남자친구가 진아와 관계를 가지려 했다는 걸 알게 된 혜미는 분노의 정점을 보여준다.


고등학생때 이 영화를 봤을 땐 '성적 폭력'에서 느낀 충격이 컸다. 그렇지만 고등학생 이후 20살을 넘어오면서 파란대문에서 느껴지는 감정들도 점점 변해왔다. 지금은 오히려 한 여자가 또다른 여자를 알아가는 과정, 한 인생을 알아가는 과정으로 보인다. 남자의 욕정, 그 욕구에 이용되는 여자도 보인다. 그렇게 모든것이 드러난 자리엔 두 여자가 놓여 있다. 모든걸 온몸으로 부딪히는 진아와 그 곁에 선 혜미, 영화는 그 둘을 통해 무엇을 보여주고 싶었던 걸까. 여기서 김기덕 감독이 올해 한 인터뷰에서 남긴 말이 떠오른다.


“빛을 알려면 어둠을 알아야 하고 밝음과 어두움이 같은 색임을 알 때 지혜로운 삶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치부들, 감춰진 욕망들, 그 틈에서 상처받고 고통받는 진아의 모습은 러닝타임 내내 관객들을 괴롭힌다. 그렇게 진아의 고통을 화면으로 만나는 그 과정이 어두움을 아는 과정인 셈이다. 혜미가 영화 초중반까지 그렇게 대면하기 싫었던, 거부하고 싶었던 진아라는 존재는 결국 누구에게나 드리워진 그림자라는 것도 알 수 있다. 누구나 마음 속엔 수많은 자아가 있는 법이다. 파란대문은 한 인간이 가진 짓눌리고 감춰져있던 자아들이 드러나는 공간이라 할 수 있다. 모두가 외면하고 버려져있던 '진아'라는 자아, 혹은 남의 눈에 괜찮아 보이고 싶어하면서 자신의 욕망엔 억눌린 '혜미'라는 자아 등 그 모습들은 우리 '인간'을 담아낸다. 그렇지만 영화 마지막, 혜미는 진아에게 악수를 청한다. 어쩌면 혜미는 어두움을 마주한 후 그것이 밖으로 드러난 순간 그 둘이 같은 것임을 깨달은 것은 아닐까. 어두움도 밝음이 될 수 있음을, 중요한건 그것을 대면하는 것임을 깨달은게 아닐까. 이제 난 파란대문에서 더이상 불쾌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보단 한 인간이 또 다른 인간을 알아가는 과정이 보인다. 그 과정에서 만나는 수만가지의 감정들, 그 힘들고 어려운 감정들을 조금이라도 느껴보고 싶다면 '파란대문'으로 들어오는 것을 추천한다. 









* 좋아하는 컷. 이지은, 이혜은 참 예쁜 배우들이다. 다신없을 명배우들..!!

이 영화에 나온 모든 배우분들이 한명한명 소중하다.



* 생각해보니 내인생의 영화들엔 모두 '블루'라는 색깔이 들어간다. 신기하네..


* 사진 출처 : 다음 영화 (http://movie.daum.net/moviedetail/moviedetailMain.do?movieId=3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