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든 그 안에 있을땐 모르는 법이다. 안다고 착각하는 것일 뿐 모든건 시간이 지나야 알 수 있다. 어떤 곳에 몸담고 있을 땐 그곳이 좋은지 나쁜지를 알 수 없다. 떠나봐야 그곳이 나에게 어떤 곳인지 알 수 있다. 그래서 인생이 고통일 수 있다. 모든건 당장에 알 수 없으니 인간은 그저 묵묵히 순간순간을 살아나가고 뒤늦게 깨닫게되는 그런 과정인 것 같다 삶 자체가.
사랑은 특히 그런 것 같다. 사랑을 할 땐 사랑한다는 생각에 젖어있지만 막상 헤어져보면 그게 정말 사랑이었는지 아닌지는 제대로 판가름 난다. 드럽게 힘들고 징글징글했어도 헤어진뒤 사랑의 아픔이 찾아오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죽을만큼 사랑한다 생각해도 막상 헤어지니 오히려 더 좋은 경우도 있다. 그렇게 시간은 우리에게 알려준다. 우리가 한 경험들이 인생에서 힘이 되든 고통이 되든 그것은 시간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 같다.
내가 제일 슬펐던 건 그런거였던 것 같다. 이제 더이상 그때의 일들을 하지 못해서도, 할수 없어서도 아니었다. 나에게 가장 슬펐던 건 그 많은 시간을 사랑한다 생각했음에도 뒤돌아보면 그에 대해 아는것이 별로 없다는 점이었다. 난 뭘 사랑했던걸까, 그가 아닌 그에 투영된 내 모습을 사랑한건 아니었을까, 이런 생각들이 시간이 흐를수록 든다. 사랑하는 건 그사람을 알고자 함이다. 좋아하는것, 싫어하는것을 많이 아는 만큼 그 사람을 이해하고 느끼고 있다는 증거다. 그런 기준이라면 난 얼마나 그를 사랑했을까?
그래서 오히려 사랑이 끝난 지금 난 그 아이가 뭘 좋아했는지를 떠올리려 노력한다. 처음 이런 생각을 했을땐 비관적일 정도로 아무 생각이 안났다. 1년밖에 안됐는데 이렇게 백지가 되어버리다니.. 시간이 참 허무하단 생각도 들었다. 그렇지만 조금씩 떠올려보니 아주 사소한 것들부터 생각이 난다. 오이를 싫어하던, 면요리를 좋아하던, 매운걸 좋아하지만 잘 못먹던, 비염이 있어 뜨거운걸 먹을 땐 콧물을 흘렸던, 걷는걸 좋아하던, G-Funk를 좋아하던, 로저 트라우만을 좋아하던, 진말페의 in his arms를 좋아하던, 스웨이드 재질의 운동화를 좋아하던, 기타노 다케시의 키즈 리턴을 좋아하던, 스카페이스를 좋아하던, 브라이언 드 팔마를 좋아하던, 러브레터 ost를 좋아하던, 미드를 좋아하던, 고속버스를 싫어하던, 밤을 지새우는 걸 좋아하던, 맥주를 좋아하던, 계피뿌린 카푸치노를 좋아하던, 녹차라떼를 좋아하던것 등.. 지금은 그렇게 기억이 나네.
어쩌면 지금까지 난 혼자서 대단한 사랑을 했다고 착각하며 지내왔는지도 모르겠다. 초라한 기억들 속에서 씁쓸함이 밀려오지만 그래도 이제 어떤게 사랑인지는 알겠다. 좋아하는게 뭔지, 싫어하는게 뭔지 그것부터 다가가는게 사랑의 시작인 것 같다. 사랑은 알고싶은 거니까 ! 굳이 사람이 아니어도 무언가를 사랑할 때 다가가는 과정, 알아가는 과정이 소중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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