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도 쓰자/단상

[단상] 괴로운게 이런걸까

멜로마니 2013. 12. 12. 16:41




보통 책을 읽으면 괴로움이 잊혀진다. 잊혀진다기보단 줄어든다고 하는게 맞겠다. 책이 주는 이야기들이 내가 가진 고민,고통과 만나 해소되는 만큼 그런 책들을 좋아하게 되는 면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올해엔 다른 해보다 더 많이 책에 기댔던 것 같다. 마음이 불안하거나 힘들때 도서관에 찾아가 서재를 두리번 거렸다. 괜시리 땡기는 제목들을 보면 빌려보면서 실망도 하고 만족도 하고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 이런 나의 공식을 깨트려주는 책이 나타났다. 바로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다. 이 책은 내 평생 가장 강력한 힘으로 날 무너뜨리고 있다. 마치 '너가 고통을 알아? 너가 사랑을 알아?' 라고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말을 걸어오는 느낌이다.


매일밤 이 책을 읽고 잠을 잔다. 그런데 어젠 책을 도저히 못읽겠어서 억지로 덮고 잠을 청했다. 그렇지만 역시 잠은 오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이젠 이 책을 읽지 말아야 하는거 아닌가 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재미가 없느냐고? 전혀 아니다. 읽을때마다 내 속에 들어갔다 온 것과 같은 책 내용에 무서울때가 많다. 밑줄을 긋다가 종이를 접다가 별을 치다가 아주 별 짓을 다한다. '사랑'에 대해 이렇게 파고든 작가가 또 있을까. 2권 '스완네 집 쪽으로'에서 어쭙잖게 사랑이 뭔지 알겠다고 으스댔던 나는 9권 '갇힌 여인'에서 제대로 무너졌다. 내가 사랑을 했던 모습들이 프루스트의 책속엔 아주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그가 알베르틴을 사랑하며 느꼈던 감정들이 나에게 강력하게 다가왔던 것도 그런이유다. 어떻게 이렇게 사랑의 감정을 잘 잡아낼 수 있을까.. 그리고 왜이리 사랑은 아픈걸까.. 책을 읽으며 '괴로움'이 뭔지 제대로 느끼고 있다.


아무래도 이 책이 나에게 치명적일 만큼 강하게 다가오는 건 지금 내 감정들에 기름을 끼얹기 때문인 듯하다. 요즘 날 잡고있는 감정들을 나도 잘 모르겠지만 이 책만 읽으면 사랑에 대한 감정들이 자꾸 날 괴롭힌다. 프루스트는 이 책을 통해 과거에서 사랑과 힘을 발견하지만 나에겐 사랑이 과거가 아닌 현재형이기에 그만큼 괴로움이 큰 것 같다. 차라리 이 책을 안읽었다면 과거로 치부되었을 감정들이 날 덮치고 있다. 고통이 큰 만큼 사랑이라는 걸 제대로 느끼는 요즘이다. 이렇게 감정이 심하게 일어난게 처음이라 책을 계속 읽어야 하는지 고민도 된다. 10편 '사라진 알베르틴'편은 정말 힘들 것 같다. 아직 읽지 않았지만 벌써부터 그 마음이 느껴져 가슴이 아프다.


날 송두리째 흔들어 놓고 있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잃어버린 시간을 찾는 과정이 이렇게 괴로울지 몰랐다. 책을 그만 읽어야 할지, 그럼에도 계속 읽어야 할지 모르겠다 도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