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의 변호사들 │ 오준호(작가), 민주노총 법률원 (글), 최규석 (그림) │ 미지북스
..
더 추악한 것은 일류 기업을 자처하는 삼성이 피해자들을 돈으로 조종하려 한 일이다. 김시녀씨와 한혜경 씨가 반올림의 도움을 받아 산업재해 신청에 들어가자 삼성에서 전화가 왔다. 10억원을 줄테니 신청을 포기하고 합의를 보자고, 반올림과 관계만 끊으면 된다고 했다. 그동안 병원을 전전하느라 지친 엄마는 딸에게 '우리 여기서 합의하자. 너무 힘들다'고 했다. 딸은 죽어도 반올림 배신할 수 없다고 버텼다. "그런데 삼성에서 또 전화가 와서 10억 원을 주긴 주는데 한꺼번엔 못 주고 일부는 일시불로 주고 나머지는 매년 나눠주겠다고 해요. 좀 지나서는 5억원을 주겠다고 하고. 그렇게 시간을 끌어요. 산재 신청 불승인 나고 행정소송 들어가는데 기한이 있거든요. 그 기한이 지나면 소송을 못 걸어요. 결국 우리가 소송에 들어갔더니 전화가 와서 이제는 합의를 해줄 수 없다는 거에요. 그래서 내가 '너희 합의 하려던 거 아니잖아. 이 기한만 넘기게 하려던 거잖아' 했더니 노골적으로 맞다는 거예요. 내가 정말 욕이란 욕은 다 했어요."
7월 20일 경찰은 살수차, 최루액, 헬기를 동원해 군사 작전을 방불케 하는 진압 작전을 펼쳤다. 경찰은 용산참사의 원인 중 하나였던 컨테이너
진압을 또다시 선보였고 그야말로 토끼몰이식 인간 사냥을 벌였다. 노동자들이 고무총에 피부가 찢어지고, 테이저건이 얼굴에 박히고, 경찰의
집단 구타에 실신하고, 건물 옥상에서 떨어져 척추가 산산조각 나는 등의 일이 속출했다. 이날의 악몽 같은 진압은 쌍용자동차 파업 기록영상 <<당신과 나의 전쟁>>에 잘 나와있다. 단, 쌍용차 노동자들은 이 영상을 두고 "우리가 겪은 일의 10분의 1도 나오지 않았다."고 말한다. (2012년 9월 쌍용자동차 청문회에서 조현오 당시 경기도 경찰청장은 '당시 진압에서 경찰 100여명이 중경상을 입었지만 노조원은 한 명도 다치지 않았다."고 진술하여 국회의원들과 노동자들의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쌍용차를 이지경으로 몰아간 것은 노동조합이 아니라 회사였다. 하루아침에 인력의 반을 잘라내겠다는데 어떤 노조가 가만히 있을 수 있을까. 그렇다면 어째서 대규모 정리해고를 단행해야 할 정도로 회사가 어려워졌는지부터 먼저 봐야 한다. 그것은 2004년 쌍용자동차를 인수한 중국 국영기업 상하이차가 핵심 기술만 빼가고 생산성 향상과 관련된 부분에는 단 한 푼도 투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점은 현재 쌍용자동차 측도 인정하고 있는 사실이다. 쌍용자동차는 IMF이후 경영난을 이기지 못해 법정 관리를 받고 있었다. 하지만 2001년부터 2004년까지 연속 흑자를 내면서 점차 상태가 나아지고 있었다. 상하이차가 쌍용차를 인수하려 할 당시에도 기술 유출이 목적일 거라는 우려가 있었다. 이런 우려를 불식하려는 듯 상하이차는 직원 고용 승계와 함께 1조 2천억원을 신차 개발과 공장 증설에 투자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상하이차는 약속을 하나도 지키지 않았다.
결국 쌍용차 정리해고는 회사 측의 잘못으로 발생한 부실 경영과 그에 따른 회사의 회생 비용을 노동자에게 전부 떠넘긴 행위였다. 대주주 상하이차는 기술만 값싸게 뽑아내고 먹튀해버렸다. 기업의 이윤 증대를 위해서는 노동자를 소모품처럼 버려도 된다는 신자유주의 논리를 법원이 옹호해준 셈이다. 남은 것은 노동자들 가슴의 상처와 생활고에 시달리는 가족들, 그리고 죽음의 행렬이다.
현대중공업은 배를 만드는 회사다. 공정 부분별로 성원기업이니 창조기업이니 하는 용역 업체가 들어온다. 노동자들은 현대중공업의 감독하에 일하지만 형식적인 근로계약은 용역 업체와 맺는다. 월급도 용역 업체에서 받는다. 이 노동자들이 노조를 만들면, 이제는 과거의 악명처럼 현대중공업이 직접 나설 필요도 없다. 하청업체와 계약을 해지하면 끝이다. 그러면 조합원들은 한순간에 사라지고 노조는 와해된다. 어렵게 노조를 만들어도 하청 업체는 교섭에서 권한이 거의 없다. 시간당 시급을 포함한 일체의 복리 후생 제도는 모두 원청이 결정하고 하청 업체는 따를 뿐이다. 이러니 하청 업체는 인력 관리 회사에 불과하고, 노동조합의 단체교섭권이 사실상 부정된다.
혹자는 이렇게 말한다. 왜 처음부터 더 열심히 노력해서 정규직으로 들어가지, 비정규직으로 입사해놓고 정규직화해달라고 생떼를 쓰느냐고.
이랜드-뉴코아, KTX, 현대중공업 사건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정규직이냐 비정규직이냐는 개인의 능력이나 준비 정도와는 거의 무관해지고 있다. 기업은 거의 모든 업종과 업무에서 정규직 일자리를 비정규직으로 교체하는 추세이다. 어제까지 정규직이 하던 일을 어느 순간 외주 업체로 돌리고, 상시적으로 하던 일을 언젠가부터 2년 단위로 끊어 재계약 하도록 한다. 청소 노동자부터 IT엔지니어까지, 생산직 노동자부터 정부 연구 기관 연구원까지 비정규직은 일반적인 고용 형태가 되었다. 이윤 증대가 목표인 기업은, 개인이 정규직이 되려고 얼마나 노력했든 어떤 능력을 갖췄든 그에 보상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법이 이런 고용형태를 합법이라고 보장해주었으므로.
..
'뭐라도 읽자 > 발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소설/밑줄] 고령화 가족 - 천명관 (0) | 2013.06.10 |
---|---|
[책/발췌] 삶을 바꾸는 책 읽기 - 정혜윤 (0) | 2013.06.08 |
[책/발췌] 몸으로 하는 공부 / 강유원 (0) | 2013.04.28 |
[책/발췌] 나는 왜 불온한가 / 김규항 (0) | 2013.04.25 |
[책/시] 베르톨트 브레히트 시 몇 편 (0) | 2013.04.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