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도 읽자/발췌

[책/발췌] 몸으로 하는 공부 / 강유원

멜로마니 2013. 4. 28. 12:01

 

 

 

 

몸으로 하는 공부 │ 강유원

 

 

 

책을 읽지 않는 이유는, 아이건 어른이건 글에 익숙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꾸욱 참고 앉아 진득하게 글을 읽는 일부터 해보자. 이런 점에서 글읽기는 머리로 하는게 아니라 몸으로 하는 것이다. 몸이 무거워지고 글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해야 책이 손에 잡힌다. 책이 손에 잡혀야 새로운 것을 알게 되고, 자신이 모르는 게 무엇인지도 알게 된다. 자신의 무지를 깨닫는 순간이 바로 지식에의 열정이 시작되는 때다.

 

책 따로 세상 따로인지, 책과 세상이 서로 엉켜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나의 경우에는 내 삶과 책은 서로 엉켜 있다. 난 책에서 읽은 것을 세상에서 확인하고 세상에서 겪은 것을 책에서 정리한다. 책에서 읽고 감동한 바를 가슴에 새겨두고 그것을 다시 되새기곤 한다. 그리고 책을 읽는 사람 모두가 이런 과정을 조금이라도 겪을 것이다. 그렇다면 책과 세상까지는 아니어도 책과 사람은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런 먹고 살기를 넘어선 사람은 보통 사람이 아니다. 대단한 사람 되는 거 그리 어렵지 않다. 남들 사는 대로 안 살고 남들 하는 대로 안 하면 된다. '사회적 관계'를 끊어내고 독자적인 관계를 만들어 살아가면 된다. 이렇게 되면 모든 관계가 나를 중심으로 형성되므로 자유롭게 살 수 있게 된다. 선의를 가지고, 즉 어떤 대가를 바라지 않고 서로가 가진 것을 주고받게 되므로 치사한 거래 관계에 빠지지 않게 되는 것이다.

 

노예 상태는 자유로운 상태의 반대말이다. 창의력 있는 인간이라는 것의 기본도 사실은 자유로운 인간이다. 먼저 자유롭지 않으면 그 무엇도 선택할 수 없고 머릿속에 아무리 창의적인 생각이 있다 해도 그것을 입 밖으로 꺼낼 수도 없고 실천할 수도 없다면 그 생각은 무의미하게 된다. 이런 상황이 거듭되면 창의적인 생각을 애초부터 하지 않게 된다. '창의적 인간'이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바람직한 모습이라면 그것은 자유로운 상황에서만 가능하고 그런 까닭에 자유로운 인간은 가장 기본적이고 보편적인 조건이라 하겠다.

 

구체적으로 누가 위에 있어서 이래라 저래라 하는 말을 듣고 사는 것만이 노예처럼 사는 건 아니다. 그것의 옳고 그름이 검증되지 않은 채 사회에서 떠돌아다니는 풍문에 자신의 삶을 맡겨서 사는 것도 노예처럼 사는 것이다. 뼈 빠지게 고생을 해봐서 내린 결론이라면 모를까, 애초부터 '돈이 최고다'라는 말만 듣고 돈독이 오른채 사는 것이라든가, '영어 하나만 잘하면 끝난다'라는 말만 믿고 죽어라 그것에만 매달려 사는 사람도 사실은 노예다. 그러나 따져보면 이렇게 사는게 편하다. 정말 편하다. 어차피 인생이란 게 이렇게 살아도 한 세상이고, 저렇게 살아도 한 세상이다. 그러니 뭐 '의미'가 어떻고, 자유가 어떻고 하면서 사는 건 피곤하기만 할 뿐이다. 역사에 이름을 남길 것도 아니니 대충, 남들 사는 대로 사는 게 최고라는 생각이 나쁠 게 뭐 있겠는가.

 

오히려 인간은 본질적으로 노예 상태에서 살기를 더 좋아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아무 생각 없는 평범함이 바로 현대인의 악의 원천임을, 즉 악의 평범성을 증언해주고 있다.

 

고민하라. 번뇌하라. 아무 생각 없음은 악이다. 아무 생각 없는 이들이 '강력한 힘으로 우리를 이끌어 주셨던 지도자 박정희 대통령'을 그리워하는 것이다. 그의 악행마저 세계사적 영웅의 결단으로 보이는 것이다.

 

끊임없이 공부하고 그것에 근거해서 독자적인 판단을 하도록 노력하라. 21세기적 인간이 되어 살아남기 위해서가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을 스스로 지키기 위해서라도 그렇게 해야 한다. 그렇게 살기가 귀찮으면 단순한 사회로 돌아가라.

 

베끼기는 초심자 시절에만 하는 것이 아니다. 평생에 걸쳐 해야 한다.

 

어떤 주제에 대해서 공부를 한다면 대개는 참고문헌 목록을 작성하고 이 책 저 책 들춰보면서 노트에 정리한 뒤 끝내는 것이 가장 흔한 일이다. 그러나 이렇게 하면 그 어떤 책도 기억에 남지 않고 문장 몇 개만 막연한 추억처럼 머릿속을 둥둥 떠다닌다. 차라리 가장 표준적인 책을 한 권 정해서 모든 말과 문장을 따져가며 끝까지 읽는 게 낫다.

 

간단히 말해서 공부 주제는 자신이 살아오면서 가장 심각하게 고민했던 문제여야 한다.

 

그 주제에 대해 가장 심오한 학설을 제시한 철학자의 책을 읽어야 한다. 이 철학자를 판별하는 근거는 베끼기를 통해 축적한 데이터베이스이다.

 

누가 아무 페이지나 펼쳐서 이거 무슨 말이냐고 물으면 나름대로 논리를 가지고 설명할 수 있을 정도로 읽어야 한다. 이 정도가 되면 이제 자기 글을 써볼 차례다.

 

오로지 원저작만을 인용하여 글을 써야 한다. 그렇게 써서 글이 안 되면 원저작을 다시 읽어야 한다. 원저작의 인용만으로 글을 쓴 다음에는 참고서에서 관련된 내용을 정리하여 각주에 덧붙인다.

 

글은 최대한 간결하게 써야한다. 열 개의 문장으로 하던 이야기를 절반으로 줄이고 그걸 단 한 문장으로까지 줄일 수 있어야 한다.

 

가장 중요한 요인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자기 학대>이다. 스스로를 괴롭히면서도 스스로 즐거울 수 있는 매저키스트가 된다면 남이 뭐라 하든 신경 쓰지 않고, 공부를 해서 명예를 얻지 않아도 슬프지 않으며, 공부가 돈이 되지 않는다 해도 서럽지 않다. 어쩌면 이런 상태가 바로, 옛사람들이 말했다는 <위기지학爲己之學>인지도 모르겠다.

 

 


 

 

요 근래 내 갈증을 채워준 강유원쌤의 잡문집 '몸으로 하는 공부'. 5월은 강유원쌤의 인문학 책들과 함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