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도 읽자/발췌

[발췌] 세 갈래 길 - 레티샤 콜롱바니

멜로마니 2018. 1. 3. 17:03



세 갈래 길 │ 레티샤 콜롱바니 │ 임미경 옮김 │ 밝은세상


31p

그의 하루는 아이들의 수학 숙제를 위해 퇴근길에 사 오는 연습장처럼 낱낱이 분절되어있다. 느긋하게 여유를 부리던 시절이 먼 옛날처럼 느껴졌다. 로펌에서 일하기 전, 아이가 태어나기 전, 모성이라는 이름의 책임들이 생겨나기 전에는 그럴 수 있었다. 그때는 전화 한 통으로 하루의 스케줄을 바꾸기도 했다. 오늘 저녁에 어때? 우리 나가서 먹을까? 거기 한번 가볼까? 지금은 모든 일이 계획에 따라, 미리 준비된 상태로, 예정된 대로 이루어진다. 즉흥적으로, 기분 내키는 대로 행동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다. 역할을 파악하고, 그대로 수행하고, 그것을 매일 매주 매월 되풀이한다. 1년 내내 그렇다. 한 가정의 주부, 조직의 임원, 워킹걸, 잇걸, 원더우먼, 여성잡지들은 사라 같은 여자들에게 이런 라벨을 붙여 분류했다.


40p

사라는 아이라는 무게를 떠맡지 않아도 되는 남편의 홀가분함, 남자들만 가지고 있는 매혹적인 가벼움을 질투했다. 남자들은 이상하게도 아이에 대한 죄의식에서 벗어나있는 것 같았다. 그들은 전혀 미안한 생각 없이 현관문을 빠져나갔다. 출근할 때 남자들은 필요한 서류만 챙겨 나갔지만, 사라는 무거운 등껍질을 지고 다니는 거북이처럼 죄의식을 짊어지고 다녀야 했다.



전국의 수백만 여자들이 그렇듯이 사라 코헨도 둘로 쪼개져 있다. 그는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폭탄이다.


(옮긴이의 말)


299p

이렇게 세 주인공은 사회가 가로막아놓은 장벽에 부딪친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공통된 한 가지 열망이 있다. 주어진 삶을 견디기보다는 자신이 선택한 삶을 살려는 열망이다. 그들은 억압에 굴복하지 않고, 자존과 치유를 지키기 위해 현실과 맞서 싸운다.

304p

역자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독자로서 이 작품을 읽으며, 나 역시 작은 나비의 이 팔랑거림을 뱃속에 담아본다. 그것은 동시대를 사는 사람으로서 나의 삶이 세 주인공의 삶과 엮여있다는 데 대한 동의이며, 나아가 우리 각자가 이렇게 이어진 그물코들 가운데 하나로서 서로가 서로의 힘이자 용기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의 팔랑거림이다.


-

2017년 끝머리에 읽기 시작해 2018년을 맞이하며 단숨에 읽어내린 책.

책을 읽기 전 나의 습관은 책 표지와 책 제목을 음미하는 것이다.

왜 책 제목은 세 갈래 길일까? 표지의 맞잡은 두 손은 어떤 의미일까? 같은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던져봤다.

그런뒤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읽어버렸다. 마지막 페이지까지 읽고 나자 이 모든 질문들이 아주 쉽게 풀렸다. 그리고 마음이 일렁였다.


멋진 소설이다. 그리고 옮긴이의 말도 너무나 멋지다.

새해에 처음으로 읽은 책이 이 책이라니. 올해 나의 독서 생활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