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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췌] 나의 꿈 사용법 - 고혜경

멜로마니 2017. 12. 27. 14:42




나의 꿈 사용법 │ 고혜경 지음 │ 한겨레출판



(43p)

남자에게 군대란 어떤 곳일까? 군 생활에서 인간적으로 당한 씻지 못한 상처가 있어서 다시 그 자리로 돌아가 상처를 다루라는 개인적 메시지일 수 있다. 이런 개인적인 이유 외에도 보편적인 의미가 있다. 먼저, 군대는 남자들에게 통과의례가 이루어지는 자리다. 통과의례는 일생 한 번만 거치는 것이 아니다. 거듭나고 죽고를 되풀이하며 여러 주기를 거치는 것이 인생이다. 아프리카 원주민 속담에 '통과의례는 절대 중단되는 법이 없다'고 한다. 중년과 노년을 거치면서 또다른 세계로 입문하는 의례가 필요하다.


(76p)

이제 심심하고 밍밍한 사랑의 맛이 얼마나 귀한지, 뜨겁게 타지 않아도 잔잔한 결을 따라 주고받는 미세한 리듬을 음미할 줄 아는 나이가 되어간다. 구질구질 징글징글한 세월을 함께 겪어내며 깊은 주름살에 자긍심이 박혀 있고, 강인함 사이에 아이다운 장난기가 새어나오는 소박한 애정이 가슴에 더 와닿는 것이다. 마법을 기대하기보다 진솔하면서도 용감히 모진 풍파를 함께 넘는 뭉근한 사랑이 아름답다.


(79p)

신성함이란 평범을 깊이 들여다보는 것이다.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사랑의 깊이와 친밀함의 정도가 신성의 차원으로 고양될 가능성을 가리키는 것이리라. 꿈으로 이어진 사랑이란 이름의 예술은 참으로 위대하다.


(109p)

아니마, 아니무스에 대한 목마름의 본질은 온전해지고자 하는 욕구이다. 잃어버린 반쪽을 찾아 하나가 되려는 열망인 것이다. 그러니 종교적인 차원이 들어 있다. 이 숭고함을 바깥에서 만나는 상대에게 투사해서 상대가 자신의 열정이나 영감의 샘이 되어주기를 기대한다. 또 이런 파트너를 만나기만 하면 삶의 외로움과 소외, 허무가 해결될 것이라고 여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는 '착각의 늪'에 빠졌다.


(125p)

'착하게 살기보다 온전하게 살아라!' 이보다 해방감을 주는 표현이 있을까? 그런데 이 말의 무게는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 융의 이 표현을 처음 듣는 순간, 나는 머리를 망치로 맞는 듯한 느낌이었다.


(149p)

용사의 노래는 패배의 노래가 들어가야 완성이 된다. 우리는 승리만을 노래하는 반쪽 이야기가 온전한 진실이 아니라는 것을 자주 망각한다. 긍정과 희망과 낙관만을 노래하는 문화가 이를 조장한다. 고대 지혜의 전통은 이런 온전한 이야기를 보전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들이 우리보다 덜 병리적이고 영적으로 훨씬 성숙했던 게 아닐까? 만일 이런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다면 지금 나의 모습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수치심과 두려움, 후회와 패배에 대해서도 가리거나 덮으려 용쓰지 않고 이토록 '착한 체' '잘난 체' '괜찮은 체' '강한 체' 할 필요가 없었을지 모른다. 두렵기 때문에 용기가 필요하다는 걸 예전에 알았더라면 내 두려움이나 나약함을 사랑스럽게 바라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실패가 있으니 승리의 영광도 있다는 걸 진작 알았더라면 실패도 삶의 과정으로 이해했을 것이다. 무엇보다 나 자신과 남을 품는 가슴이 훨씬 넓었을 것 같다.


(175p)

자신의 지식과 의지로만 군림하려 할 때, 통제되지 않는 세상은 견딜 수 없다. 따라서 타도의 대상으로 간주한다. 자연스레 파괴를 일 삼고 세상을 정복의 대상으로 보며 약자에게 가혹한, 기형적인 영웅으로 살게 된다.


(180p)

삶에 의문이 생길 때, 질문을 명확하게 만들어 마음에 품고 주변과 내 안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지켜본다. 무의식에 의식적으로 튜닝을 하면 오라클 또한 선명해지기 때문이다. 사방에서 답을 들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감각만 있다면 가능한 일이다. 이때 의미 있는 우연인 공시성도 빈번하게 경험하게 된다.


(182p)

나는 내게 주어진 소명의 삶을 산다는 자부심이 있다. 그렇지만 자아가 세운 계획에 따라 불굴의 의지로 목표를 성취하는 삶이 나에게는 오히려 낯설다. 어떻게 꿈을 공부했고 왜 신화를 택했고 어떻게 그런 학교에 유학 갔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엉거주춤 짜임새 없는 답을 한다. 가다가 툭 걷어찬 돌이 내 삶의 방향을 바꾸었고 우연한 만남이 새 길을 열어 주었다. 그러다 보니 지금 이 자리에 있다.

내가 잘 한 일은 재밌는 걸 만났을 때 뒤돌아보지 않고 계산하지 않고 뛰어든 것이다. 이 천진한 자세는 충분한 대가를 치르게 만들었지만 두려움이나 주저함으로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는 삶을 살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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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시험 결과 발표를 앞두고 악몽과 가위눌림이 잦아 읽게된 책.

오늘부터 꿈 일기를 쓸것이다. 무의식이 걸어오는 이야기에 귀를 귀울이고 스스로를 돌봐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