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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프랑스] Le Havre (2011) - Aki Kaurismäki

멜로마니 2013. 4. 10. 17:52

 

 

 

 

 

 

 

Le Havre(2011) Aki Kaurismäki

 

 

 

12월, 영화관에서 처음 이 영화의 예고편을 봤다. 예고편을 볼때부터 독특한 느낌이 가득했는데 이제서야 보다니.. 마음같아선 극장에서 한 번 더 보고싶다. 보통 프랑스 영화관에서는 개봉영화수가 많아 금방 영화들이 내려가는데 이 영화는 12월에 개봉하고 지금까지도 많은곳에서 영화를 상영중이다. 또 영화의 인기에 힘입어 문화잡지에서는 감독 Aki Kaurismäki의 인터뷰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나도 오늘 Trois couleurs 라는 잡지에서 이분의 인터뷰를 보고 영화를 봤는데 그래서 그런지 더욱 감상에 젖어버렸다. 영화 후반에 혼자 울먹거리며 크레딧이 올라갈때까지 멍하게 앉아 생각했다. '연대'란 무엇인가.. 이 영화는 이 화두를 아주 깔끔하게 보여준다. 영화를 보면서 연출, 메세지에 대해 깊게 생각했다. 그리고 영화가 우리 한국사람들에게 전해주는것에 대해서도 생각해봤다.

 

프랑스의 항구도시 Le Havre 역에서 사람들이 내리기를 기다리고 그 사람들을 손님삼아 구두닦이로 하루벌이를 하는 Marcel(마르셀). 그는 원래 이름난 자유로운 작가였지만 스스로 이 도시에 와서 구두닦이 일을 시작한다. 그는 사람들의 구두를 닦아주는 일을 하면서 그것이 대중에게 다가가는, 그리고 사람들을 위해 헌신할 수 있는 일이라고 여긴다. 물론 생활비는 턱없이 부족하다. 그래서 매일 동네 이웃인 빵집 여주인과 슈퍼 아저씨에게 빚을 지기 일쑤지만 이웃들은 그런 그를 너그럽게 이해해주며 함께 산다. 그는 하루종일 번화가에서 구두닦이 일을 하고 저녁에는 오랜 친구, 바의 여자주인과 술을 한 잔 한다. 그리고 작고 낡은 집에 돌아와 외국인 아내인 Arletty와 조촐한 저녁을 함께한다. 그러던 중 아내가 병을 얻어 입원을 하게되고 한편 밀입국 하기위해 항구에 정박해있던 컨테이너박스가 탄로나서 흑인 꼬마아이 Idrissa 가 홀로 탈출한다. Idrissa 는 경찰에 쫓기던 중 Marcel의 도움을 얻어 몸을 숨기고 그때부터 Marcel의 집에서 함께 살게된다. 정이 많은 Marcel은 꼬마를 도와주기위해 그의 부모를 찾아 프랑스의 다른 지방까지 가서 영국에 살고있다는 꼬마의 엄마 주소까지 얻는다. 그렇게 도와주는 동안 경찰의 포위망은 점점 좁혀오고 이 밀입국일을 맡고있는 형사 Monet 는 Marcel을 의심하고 그의 주변을 조사한다. 하지만 그의 친구들은 Marcel을 도와 Idrissa를 영국으로 보내주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고, 결국 밀입국을 할 수 있는 뱃값을 공연 수익금을 통해서 지불한 뒤 Idrissa는 뱃길에 오른다. 하지만 바로 그때 나타난 형사 Monet. 배에서 Idrissa를 발견하지만 그는 Idrissa를 그냥 보낸다. 그렇게 Idrissa는 영국을 향해 떠나고 병을 얻었던 Marcel의 아내는 퇴원 후 그와 함께 집으로 온다. 그렇게 영화는 따뜻하게 끝이난다.

 

 

 

작위적인 조명과 연극적인 연출. 오히려 사실적으로 다가왔고 새로웠다.

 

 

이 영화는 Le Havre역 앞에서 구두닦이 일거리를 찾아 우두커니 서있는 두 인물을 보여주는 첫 장면부터 돋보인다.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흐르는 그의 연출은 요즘 영화와는 많이 다르다. 정적이고 다소 어색하게도 보이는 연기와 행동, 연극적인 미장센, 천천히 느린 템포로 흘러가는 이 영화를 보며 난 'Rainer Werner Fassbinder(라이너 베르더 파스빈더)'를 떠올렸다. 1970년대, 날카로운 대사와 풍부한 근접 촬영으로 독일에서 새로운 영화바람을 불러일으켰던 파스빈더의 작품 중 특히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가  생각났다. 두 영화에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자연스럽지 못한, 어쩌면 조금은 과장되고 어색해보이는 말투나 동작은 오히려 사실감을 불러일으킨다. 과장된 극적 연출이 오히려 깊은 리얼리티를 보여준다는걸 느끼는 순간이다. 연기도 하고, 각본도 쓰고 연출, 제작까지한 감독의 능력을 제대로 볼 수 있는 영화였다.

 

이런 연출들을 통해 영화속에 한껏 빠질 수 있었는데, 거기에 더 깊은 감동을 준 건 스토리 속 인물 사이의 '연대' 때문이었다. 병에 걸린 아내를 놔두고 갑자기 나타난 Idrissa 를 돕는 Marcel. 그는 혼자만으로는 절대 이 일을 할 수 없었다. 좁아지는 포위망 속에서 그에게 도움을 주고 Idrissa를 위한 일을 도와준 그의 이웃들은 나를 뭉클하게 해주었다. 또 그의 이웃을 넘어서, Marcel을 의심하고 쫓아다니던 형사 Monet마저 영화의 마지막엔 Idrissa가 영국을 가도록 묵인한다. 법을 넘어선 사람간의 연대. 인간애는 어느 상황에서든 감동을 준다.

 

그렇다면 왜 Marcel은 그렇게까지 Idrissa를 도와주었을까? 영화 속에서 흑인 Idrissa를 도와주었던 동기는 없다. 그저 Marcel의 인간애라는 생각이 든다. 그것도 감동이지만.. 이 연대의식이 몇몇 유럽의 선진국에서 통용된다는 사실이 더욱 감동이었다. 프랑스에서 지내다보면 여러나라에서 온 외국인들을 자주 볼 수 있다. 그래서 그런지 이 나라는 외국인에 대한 반감의식이 한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것 같다. 그리고 상대방이 어떤 환경속에서 어떤 일을 하든 '인간'으로서 존중하고 동등하게 생각한다. 어떻게 생각해보면 그게 당연한것인데, 그렇지 않은 곳에서 살아온 나에겐 커다란 충격이자 감동이었다. 한국도 선진국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이런 인간애, 연대의식이 사람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통용될 수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 무엇보다 평등하고 공정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 선진국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영화 속, 힘들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소시민들이 연대하는 모습을 보며 한국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프랑스에선 DVD가 4월에 출시될 예정인데, 꼭 구입할 생각이다. 이 영화를 볼 때마다 인간애와 연대에 대한 순수한 희망, 용기를 떠올릴 것만 같다. 연기같지 않은 자연스러운 연기를 보여준 배우들, Le Havre 항구의 풍경들, 그 풍경들에 어울리는 다양한 음악들과 영화 포스터 속 타이포까지.. 너무나 좋았던 영화! 앞으로도 눈여겨 볼 감독이다.

 

 

* '연대'에 대하여 생각하게 해주는 좋은 영화.. 생각나서 예전 블로그에서 가져온 글.

 

Le Havre 예고편 : http://www.allocine.fr/video/player_gen_cmedia=19263498&cfilm=173542.html

 

Le Havre 감독 인터뷰 번역 : http://blog.daum.net/jooricomhaha/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