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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명작]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2006). 켄로치

멜로마니 2013. 3. 31. 17:46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 켄 로치 │ 2006

 

 

 

현재 아일랜드섬은 32개의 군 중 26개의 군만이 아일랜드 공화국이고 나머지 6개의 군은 영국령,북아일랜드이다. 8세기말 노르웨이족의 침입을 시작으로 외부의 잦은 침입이 있었고 12세기부터는 700여년간 영국의 지배를 겪었다. 끈질기게 저항한 결과 1921년 12월 6일, 영국으로부터 독립했지만 아일랜드-영국의 전쟁이후 영토가 분할되어 지금의 모습으로 남아있다. 외국으로부터의 잦은 침입과 타국의 지배, 영토분할등 우리나라의 역사와 비슷한 점이 많다. 그리고 특히 이 영화에서 다루는 동족상잔의 비극은 전쟁과 역사에 대해 생각하게 해주었다. 전쟁은 무엇을 위한것인지 그리고 역사는 어떤 방향으로 흐르는지, 그 전쟁의 역사 속 숨어있는 공통점들은 무엇인지 생각해보았다. 마지막으로 현 시대에 우린 어떤 시각으로 지나간 역사들을 돌이켜보고 살아가야하는지 정리해봤다.

 

영화 속 주인공인 의대생 데이미언은 런던의 병원에서 일을 할 수 있었지만 영국인들의 횡포와 억압을 본 후 아일랜드에 남아 독립운동에 뛰어든다. 그의 형 테디 역시 독립운동을 주도했고 후에 데이미언의 부인이 되는 시네이드 역시 독립운동을 돕는다. 영화 초반 냉혈한 영국군들에 맞서 똑같이 대응했던 아일랜드 독립운동군은 영화 중반, 영국과 아일랜드의 평화협정으로 잠시 행복의 시간을 갖는다. 하지만 그 평화협정 속엔 변하지 않는 영국의 지배가 있다는 걸 알게된 그들은 두 가지 의견으로 대립하기 시작한다. 이 평화협정을 깨고 다시 싸워서 완전한 자유를 얻자는 쪽에는 데이미언이 있고 평화협정을 체결한 후에 조금씩 우리것들을 되찾자는 쪽에는 데이미언의 형, 테디가 있다. 완전한 해방을 추구했던 데이미언쪽은 조금은 극단적이게 테디쪽에 대항하고 영화 후반부에는 영국과 아일랜드의 싸움이 아닌 아일랜드 안에서의 싸움이 시작된다. 하지만 이미 영국에서 자치대표로 임명한 테디의 힘은 너무나 막강하다. 이렇게 불붙은 두 형제의 대립에서 영화는 결국 테디가 데이미언을 총살하는것으로 끝이난다.

 

이 영화를 보면서.. 전쟁은 자주성을 되찾기 위한 희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전쟁을 그렇게 정당화 할 수 없지만 지금까지 일어난 전쟁들, 그리고 지금 일어나고있는 전쟁들중 상당부분이 그 국가, 그리고 거기에 속한 시민들의 자주성을 찾는 과정이라는 생각이든다. 그리고 슬픈건 전쟁은 어떤 종류든 희생이 있다는것. 전쟁 영화를 보면서 눈물을 흘리는건 어떤 이데올로기, 혹은 그 시대의 흐름에 휘말려 죽음을 맞을수 밖에 없는 모습들 때문일것이다. 그리고 내 주변의 공동체와 사람들을 잃는 과정들은 전쟁의 잔인한 모습이다. 이 수많은 전쟁 속에서 누가 무엇을 위해 희생된걸까 그리고 왜 그래야만 했을까, 희생없는 해답은 없는것일까.. 데이미언의 죽음을 보며 많은 의문에 쌓였다. 죽음을 통해 자신의 신념, 자신이 원하는 자유를 위해 희생하는 데이미언. 그리고 한 편에선 동생의 총살령을 직접 명령함으로써 자신의 신념을 밀어붙이는 형, 테디.. 이 두 사람 모두 자신을 버렸다. 그리고 신념을 위해 희생됬다. 이 점에서 우린 그들에게 어떤 비판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아쉽다. 이 파란만장했던 역사를 통해 아일랜드와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문제점은 서로 닮아있었다. 만약 영화 속에서 데이미언의 말대로 다시 완전한 자유를 위해 싸우는걸 멈추지 않았다면 지금 아일랜드는 어떻게 되었을까? 우리나라 역시 일본의 독재와 친일의 잔재를 제대로 청산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역사는 되돌릴 수 없지만 아쉬움이 남는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 역사에서 배워야한다. 다시는 이런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그래서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의 해답이 이 영화에 있었다. 영화 중후반, 영국과 아일랜드의 평화협정의 실태를 본 아일랜드의 공화주의자들이 모여서 열띤 토론을 한다. 그 중 한 사람의 말은 이 영화의 메세지를 말해줬다.

 

" 우리 지척에 자유가 있단말이야. 바로 근처에, 아직 잡을 순 없지만 1인치정도 떨어져 있는거야. 우리가 여기서 그만두면 우린 다시는.. 여기서 지금 느끼는 이런 힘을 회복하지 못할거야. 난 여기서 그걸 느낄 수 있어. 우리가 여기서 그만 둬 버린다면, 우리 생전에 이런 에너지를 다신 못 느낄 거라고. 다시는! 그래서 모두에게 호소하는거야. 그 1인치를 쟁취하자고. 영국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지기 전에는 우린 그만둘 수 없어 "

 

우리는 지금도 그 1인치가 부족하다. 그래서 곳곳에서 소리없는 전쟁과 희생이 나타난다. 난 그렇기에 지금부터라도 제대로 그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선 현재에서 온 에너지를 쏟아야 한다는 것에 동의한다. 유보하는 인생에 진보는 없다. 그리고 더 나아가 역사도 정체할 뿐이다. 해야할 것을, 그리고 고쳐야할 것을 위해 지금 투쟁해야하고 찾아야한다. 지금까지의 내 인생의 권리와 만족이, 과거에 자신을 희생하여 불합리를 고치려고한 많은 사람들의 산물이라면, 나도 시대의식을 가지고 미래의 사람들을 위해 마땅히 무엇인가를 해야만한다. 더 옳고 바른 사회속에서 살 수 있도록!

 

민주화를 위해 앞장섰던 분들이 하나,둘 세상을 떠났다. 그분들의 죽음을 보며 참 인생 허무하다는 생각을 했다. 왜 옳은 일을 위해 자신을 희생했던 사람들이 고통을 받을까 그리고 왜 세상은 나쁜사람들만 잘 살까란 생각도 했다. 모진 고문을 받고 후유증을 앓다 돌아가신 김근태씨를 보면서.. 당시 고문을 했던 이근안씨는 그냥 살아가고있다는게 아이러니했다. 영화를 보고나서.. 이 모순과 의문이 줄어들 수 있도록, 그리고 옳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 주류가 될 수 있도록 노력을 해야한다는 생각이 절실하게 다가왔다.

 

영화 초반, 데이미언 부인의 남동생 미카일이 영국군의 구타로 잔인하게 죽고, 그 장례식에서 그의 할머니는 구슬프게 아일랜드의 시인 Robert D. Joyce의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을 부른다. 그 황금빛 보리밭을 흔드는 미풍은.. 영화를 넘어 우리의 인생을 흔들고 깨워준다.

 

 

 

* 영화 '지슬'보고 생각난 영화. 예전 블로그에서 가져온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