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마지막으로 기사 번역을 그만둔다. 신문사에서 개편이 들어가면서 내 기사가 속했던 카테고리가 없어진다고 들었다. 언젠가 이걸 그만둘거라 생각했지만 갑작스러워서인지 기분이 마냥 개운치만은 않다. 1년 7개월이란 시간동안 900개가 넘는 기사를 번역해 다시 썼다. 별게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쌓인 시간만큼 기사량도 많았다. 2년이 가까운 시간을 습관처럼 써오면서 질릴때도 있었고 뿌듯할 때도 있었다. 그렇지만 얻은게 아주 많은 시간이란건 확실하다.
사람의 앞길은 한치 앞도 모른다는 말이 요새 참 와닿는다. 신문사 인턴은 상상해본적도 없는 일이었다. 얼떨결에 지원한 뒤 기사 쓰는 걸 배우고 하나하나 써가면서 처음으로 어설픈 사회생활도 해보고 사람들도 만났다. 단 4개월이었지만 한국에서 직장이란게 어떤 곳인지, 기자들은 어떻게 살아가는지 살펴보는 좋은 기회가 됐다. 무엇보다 좋은 편집장님을 만나 내가 쓴 글을 검토받고 꾸준히 글쓰기를 해나갈 수 있었다. 그 결과 지금은 더 가볍고 또렷하게 글을 쓸 수 있게 됐다.
프랑스 시사를 접한다는 것도 큰 행운이었다. 대학원 진학을 어렴풋하게 생각해왔지만 그게 확실해 진것도 기사 번역을 하면서 부터였다. 매일 기사 아이템을 찾기 위해 열심히 신문을 읽으니 시사도 자연스레 들어왔다. 읽는 속도도 빨라졌고 문맥을 파악하는 힘도 생겼다. 그래서 오랜시간 꾸준히 한다는게 얼마나 큰 힘을 가졌는지 제대로 느꼈다. 처음엔 하루종일 걸렸던 번역 작업도 지금은 부담감도 줄어들고 빨라진 걸 보니 긴시간 꾸준히 노력하는게 참 중요하다는걸 다시 한 번 알게 됐다.
기사를 써온 1년 7개월간 회사는 수도없이 변해서 많은 기자분들이 떠나셨다. TV, 드라마 속 회사원들은 참 편하게 한곳에서만 회사생활을 하던데 내가 본 사회와 한국 직장은 그렇지 않았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직장을 떠나고 다시 새롭게 들어오고를 반복한다. 대기업이 아닌 작은 직장에선 연봉협상이나 정직원 대우는 얼토당토 않은 말이다. 프로젝트를 위한 계약직도 많고 근로조건과 처우가 좋지 않은 곳도 상당수다. 이에 더해 언론사에선 클릭수를 높이는 자극적인 아이템만이 중요하다. 정작 우리가 알아야 하는 사회의 문제점이나 진실들은 배제된다. 내가 만난 기자님들 모두 사회가 가진 문제점을 인식하고 변화하길 바랐지만 클릭수 앞에서 그 바람은 현실화되지 못한다. 약하디 약한 한국 언론의 현실을 마주한 순간이다.
많이 보고 느껴서인지 다른 아르바이트보다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이제 실력을 더 쌓기 위해 공부에 매진하고 싶다. 지금은 풋내기일지 몰라도 앞으론 더 정교하고 또렷한 번역을 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더 진지한 주제를 다루고 깊이 있는 글을 전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선 아직도 배워야 할게 가득하다. 오랜기간 머물렀던 디딤돌을 딛고 열심히 내공을 쌓을 것이다. 도약을 위해 다시 한 번 실력을 갈고 닦을 때다.
'뭐라도 쓰자 > 단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단상] 세월호 1주기에 부쳐 (0) | 2015.04.15 |
---|---|
[단상] 사랑은 촉각? (0) | 2015.04.14 |
[단상] 달관과 거세사이 (0) | 2015.03.18 |
[단상] 할머니 (0) | 2015.02.28 |
[잡상] 여행잡상 (0) | 2015.01.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