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도 읽자/발췌

[발췌] 나의 한국현대사 - 유시민

멜로마니 2015. 3. 22. 23:07



나의 한국현대사 │ 유시민 │ 돌베개 │ 2014. 07





비무장 시위가 무장투쟁으로 번진 것은 계엄군이 발포를 했기 때문이다. 5월 21일 오후 1시 전남도청 정문 앞에 진 치고 있던 제 11공수여단 병력이 갑자기 흘러나온 애국가 연주에 맞추어 일제히 M16소총과 M60기관총을 공중으로 발포했다. 그래도 시위대가 흩어지지 않자 곧바로 사람을 향해 총을 쏘았다. 전일빌딩, 상무관, 수협 전남지부 건물 옥상에서는 저격수들이 조준사격을 가했다. 그것은 명령에 따른 조직적,계획적 집단발포였다. 5월 19일과 20일에도 제11공수여단과 제3공수여단 병력이 권총과 M16을 발포해 수십 명의 사상자가 나왔지만 그것은 산발적,돌발적 사건이었다. 그러나 도청 앞 발포는 달랐다. 거리는 순식간에 피바다로 변했다.


분개한 시민들은 광주 시내뿐만 아니라 나주, 화순, 장성, 영광, 담양 등 인근지역 파출소와 예비군 무기고를 습격해 카빈소총과 M1소총을 확보했고 화순탄광의 다이너마이트를 반입했다. 시민들이 먼저 총을 쏘았기 때문에 자위권 차원에서 발포했다는 신군부의 주장은 거짓이었다. 군의 모든 기록 가운데 최초로 등장하는 무기탈취 사례는 광주 전투교육사령부 '작전상황일지'에 기록된 5월 21일 오후 1시 35분 전남 '화순파출소 무기 피탈' 사건이었다. 특전사가 전남도청 앞에서 발포를 할 때에는 시민들에게 총이 없었다. 시민들이 무장항쟁을 시작하자 경찰관들이 사복으로 갈아입고 광주를 빠져나갔고 특전사 병력은 외곽으로 이동해 광주의 교통과 통신을 차단했다. 그들은 인근 도시로 가는 국도에서 광주를 빠져나가는 민간차량을 저격하고 주군지 인근의 민가에서 총을 쏘았다. 여성과 어린이를 포함해 많은 시민이 죽었다. (23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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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한국현대사를 깨작깨작 읽고있다. 읽을때마다 열받고 화가 나서 숨을 고른다. 55년이라는 시간동안 한국이 보여준 역사는 부당함 그 자체였다. 그리고 그 부당함은 고쳐지지 않은채 독재자의 딸이 대통령을 하는 현재까지 만들었다. 읽는 내내 답답함이 느껴져 페이지가 잘 안넘어갔다. 

그렇게 씩씩거리며 읽던 중 5.18 광주 민주화운동 부분에서 몇해전 전라도 여행이 생각났다. 당시 나주를 여행하며 길거리를 걸어다닐 때 민주화운동과 관련한 안내판들을 꽤 봤기 때문이다. 그땐 그런 글들을 읽으며 단순히 광주가 아닌 이곳에서도 민주화운동을 했구나 하고 넘겼었다. 그런데 지금 책을 읽으니 이제야 이해가 갔다. 신군부가 시민들에게 발포명령을 한 뒤 시민들은 자신들을 지키기 위해 광주 인근에서 무기고를 습격했다. 내가 아무 생각없이 걸었던 그 길에서 시민들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무릅쓰고 총을 쥐었다. 가슴 깊이 새겨야 하는 분들이다.

진보정권이 다시 권력을 잡는다면 역사교육에 힘을 실어야 한다고 본다. 잊혀져가는 민주화운동의 흔적 그리고 보수정권이 자행한 학살의 장소를 보존해 미래 세대들에게 제대로 남겨야만 한다. 프랑스의 경우 동네에서 길을 걷기만 해도 레지스탕스가 운동을 벌였던 곳마다 설명을 해주는 돌판이 심심찮게 보인다. 파리 2존에 살았을 땐 지하철을 타러 갈때마다 그런 안내판을 꼭 봤다. '이곳에서 몇월 몇일 정권에 저항하던 레지스탕스 몇 명이 총에 맞아 전사했다 혹은 학살 당했다' 식으로 역사를 길위에 새겨놓는다. 그러니 파리의 길엔 과거가 살아숨쉰다. 

88년에 태어난 나는 민주화운동이란 말이 참 낯설다. 그렇지만 그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언제나 눈물이 흐른다. 가슴이 먹먹해지고 한스러운 느낌마저 든다. 이제 세상은 발전할대로 발전해 부유해졌지만 사회는 여전히 썩어있다. 지금 내가 당연히 누리는 많은 것들이 몇십년전 한국을 살았던 수많은 분들이 목숨을 바쳐 이뤄낸 것이란걸 알기에 무책임하게 살 수 없다. 분노하고 행동하는 것, 그게 산자의 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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