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도 읽자/발췌

[발췌] 발원 - 김선우 中

멜로마니 2015. 7. 24. 21:02



발원 │ 김선우 │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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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율이여, 너무 애쓰면 조바심과 어울리고 너무 게으르면 번뇌와 어울리게 된다. 너는 그 중간을 취하도록 하여라'


원효가 느끼는 부처는 중생의 숭배를 슬퍼하는 부처였다. 부처를 숭배하느라 허비하는 그 시간에 그대들 스스로 부처의 삶을 살기를 소원하라! 부처가 되기 위해 스스로 노력하라! 부처의 행위로 세상을 장엄하라.....


거의 완전하다고 여겨지는 영혼의 도반. 둘 사이에 흐르던 떨림과 긴장감은 각자가 꿈꾸는 자신의 길에 대한 완성의 열정으로 바쳐졌고, 서로의 성장을 격려하는 뜨거운 마음이 둘 사이에 지속적인 인연의 고갱이를 만들며 늘 새로웠다. 그러한 마음의 정황을 무슨 말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런데 여인으로서 요석이 원효에게 요구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요석은 부처로 살라고 원효를 격려했고 그것은 원효 스스로의 마음 길이 흘러가는 중심이기도 했으므로 갈등 없이 그 길에 매진해 왔다. 그랬다고 믿었다. 


대안이 팔을 벌리더니 느리고 긴 춤사위를 펼쳤다. 우뚝 선 원효가 부신 듯한 눈으로 춤추는 대안을 보았다. 흐잇, 헷! 풀어라, 풀어! 대안의 그림자 속에서 혜공이 따스하게 원효를 향해 웃었다. 어느 틈에 항사사에서 추던 혜공의 춤과 노래가 분황사 금당 마당을 가득 채우며 너울거렸다. ' 부디 당부하네, 너는 혼자 있을 때에도 너를 위해 춤을 추어라. 스스로를 위한 춤이 저잣거리로 흘러들어 저마다의 백성을 깨울 수 있다면! 중생 스스로 저마다의 춤을 추며 천지간 손잡게 할 이 누구이시냐.'


' 살아가면서 사람들은 슬프고 괴로운 일을 당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첫 번째 화살은 피할 수 없이 닥칩니다. 살아 있으므로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하는 일들이 있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슬픔과 괴로움은 그 자체로는 번뇌가 아닙니다. 슬프고 괴로운 일을 당했을 때 충분히 슬퍼하고 괴로워한 후, 빠져나오면 됩니다. 문제는 슬픔과 괴로움 그 자체에 끌려가며 자신 속에 번뇌를 쌓을 때 생깁니다. 슬퍼한 후 슬픔을 해방시키지 못하고 슬픔에 사로잡혀 자신을 감옥으로 데려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두 번째 화살에 맞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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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모로 참 감사한 책이다. 시험을 앞두고 있어서인지 3월부터 지금까지 읽은 책이 거의 없다. 중요한걸 앞둔 만큼 책을 읽는 시간조차 아깝게 느껴졌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럴수록 조바심은 더 커졌다. 지금껏 책을 통해 힘을 얻고 한발 한발 나아간다 생각했는데 그게 멈춰버렸다 생각하니 자꾸만 신경이 쓰인 것이다. 올해는 어찌 이리 지지부진 한 것인지, 마음 속에 두고 있는 일들은 챙길 수 없는건지, 불평만 했었다. 


그러던 중 몇 개월만에 책을 들게됐다. 바로 원효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 '발원'이다. 1권을 구입한 뒤 하루만에 다 읽고 다음날 다시 2권을 사 완독했다. 복잡하고 얽혀있던 내 마음과 소설이 닿아있었기 때문일까. 이틀 동안 원효와 요석의 이야기에 빠져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여행을 했다. 평소 '원효'라는 인물에 대한 인식이 전혀 없었기에 더욱 김선우 작가가 그려낸 '원효'에 빠져버렸는지도 모른다. 그녀가 어떤 방식으로 그려냈든 원효는 세상 모든 사람이 모두 스스로 '부처'가 되는 '자유'를 꿈 꾼 사람이었음은 확실하다. 


책을 덮고 많은 생각을 했다. 그리고 하고 싶은 것도 생겼다. 시험이 끝나면 원효의 발자취를 찾아 여행을 떠나고 싶다. 원효에 대한 책도 찾아 읽고싶고 그에 대해 더 알고싶어졌다. 이렇게 '원효'라는 사람에게 빠지게 해준 김선우 작가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그리고 멋진 해제를 쓰신 강신주 쌤께도 감사의 인사를 보내고 싶다. 단언코 올해 날 살린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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