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일 / 문익환
한국의 하늘아
네 이름은 무엇이냐
내 이름은 전태일이다
한국의 산악들아 강들아 들판들아 마을들아
한국의 소나무야 자작나무야 칡덩굴아 머루야 다래야
한국의 뻐꾸기야 까마귀야 비둘기야 까치야 참새야
한국의 다람쥐야 토끼야 노루야 호랑이야 곰아
너희의 이름은 무엇이냐
우리의 이름은 전태일이다
백두에서 한라에서 불어오다가
휴전선에서 만나 부둥켜안고 뒹구는
마파람아 높파람아
동해에서 서해에서 만나 목놓아 우는
하늬바람아 샛바람아
너희의 이름은 무엇이냐
우리의 이름이라고 뭐 다르겠느냐
우리의 이름도 전태일이다
깊은 땅 속에서 슬픔처럼 솟아오르는
물방울들아
너희의 이름은 무엇이냐
우리의 이름이라고 들어야 알겠느냐
한국 땅에서 솟아나는 물방울치고
전태일이 아닌 것이 있겠느냐
가을만 되면 말라
아궁에도 못 들어갈 줄 알면서도
봄만 되면 희망처럼 눈물겨웁게 돋아나는
이 땅의 풀이파리들아
너희의 이름도 전태일이더냐
그야 물으나마나 전태일이다
청계천 피복공장에서 죽음과 맞서 싸우는
미싱사들 시다들의 숨소리들아
너희의 이름이야 물론 전태일일 테지
여부가 있나
우리가 전태일이 아니면
누가 전태일이겠느냐
어찌 우리의 숨결뿐이겠느냐
우리의 맥박도 야위어 병들어가는 살갗도
허파도 염통도 발바닥의 무좀도
햇빛 하나 안 드는 이 방도
천장도 벽도 마루도
삐걱거리는 층계도
똥 오줌이 넘쳐 냄새나는 변소도
미싱도 가위도 자도 바늘도 실도
바늘에 찔려 피나는 손가락도
아 캄캄한 절망도
그 절망에서 솟구치는 불길도
그 불길에서 쏟아지는 눈물도
그 눈물의 아우성 소리도
무엇 하나 전태일 아닌 것이 없다
전태일이 아닐 때 우리는 배신이다 죽음이다
우리는 살아도 전태일 죽어도 전태일이다
빛고을 때아닌 총성이 요란하던 날
학생들 손에서 총을 빼앗아 들고 싸우다가
전사한 양아치들아
너희들도 당당한 전태일이었구나
먹을 것 마실 것 있는 대로 다 내어다가
아낌없이 나누어주면서
새신랑 맞는 처녀의 가슴으로
떨리기만 하던 티상들아
너희들도 청순하고 장랑스런 전태일이었구나
전태일 아닌 것들아
다들 물러가거라
눈물 아닌 것 아픔 아닌 것 절망 아닌 것
모든 허접쓰레기들아 모든 거짓들아
당장 물러들 가거라
온 강산이 한바탕 큰 울음 터뜨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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