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도 해보자/남미순간

안데스 고난

멜로마니 2014. 12. 13. 23:41

 

 

 

 

 

 

 

 

 

어제 69호수 트레킹을 하면서 제대로 주제파악이 됐다. 그리고 나랑 마르꾸스가 얼마나 고산병에 약한지도 알게됐다. 한국에선 산을 좋아해서 많이 다녔는지라 왕복 5.6시간 걸리는 69호수 트레킹을 쉽게 해낼가라 자만했었다. 하지만 우린 죽자살자라는 심정으로 기어올라가는 사태가 벌어졌다.

전날 숙소 아저씨에게 69호수에 간다고 말해두니 새벽 다섯시 사십분까지 준비해두라고 알려줬다. 그리하하여 새벽에 일어나출발! 인근 숙소마다 트레킹을 신청한 사십명정도가 버스에 타고 함께 갔는데 절반이 넘는 비율이 한국인이라 남미여행의 인기를 실감했다. 여러명이 동행을 구해 붙어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나랑 맞지 않음을 느낀다. 여행을 하는건 자유와 해방감을 누리는게 큰데 여기까지와서 모르는 한국인들과 동행을 이유로 억지로 다니고 비위맞추는게 딱해보인다. 지금까지 만난 한국인 중엔 갈라파고스에서 만난 한 여성분과 몇마디 나눈게 전부다. 확실히 혼자다니는 사람과 그룹으로 몰려다니는 야행객이 하는 여행의 질은 다르다. 그럼에도 어딜가나 한국인의 패거리근성은 있으니 유치함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튼 새벽 여섯시에 출발한 버스는 한시간 반을 달려 작은 마을에 도착헸다. 공원에 들어가기 전 화장실을 가고 아침을 먹을 수 있는 곳이다. 마르꾸스와 난 코카차를 마시고 전에 사둔 1솔빵을 먹었다. 버스를 다시 탄뒤엔 국립공원에 10솔씩 내고 들어갔고 중간에 한 호수에서 사진타임을 가진 뒤 아침 9시 10분쯤 부터 본격적으로 69호수 트레킹에 나섰다.

보통 69호수 트레킹은 택시를 타고가도 되고 가이드가 필요 없지만 우린 버스로 많은 사람이 움직여서 두명의 가이드가 있었다. 나중에 느낀거지만 정말 이 두사람이 아니었다면 우린 조난당했을지도 모른다. 선봉으로 맨 앞에 한명이 가고 맨 마지막에 가이드 한명이 붙기땜에 시간 조절이 가능하고 중간중간 코카차를 주거나 짐을 대신 들어줘서 조금은 더 쉽게 올라갈 수 있다.

69호수는 안데스산맥에 있는 호수 중 69번째 호수다. 아홉시쯤 올라가면 보통 세시에서 네시 사이쯤 내려오는게 일반적이다. 69호수는 고도가 4000미터 이상이기 때문에 산소가 부족하다. 처음에 평지를 한시간정도 쭉 들어가는데도 숨이 찰정도다. 산 3개 정도를 넘어야 69호수가 있는데 마지막에 오르는 산이 제일 힘들고 죽을맛이다. 우리도 이지점에서 너무 힘들어 포기하고 싶었다. 이미 함께간 그룹의 사람들은 다 도착해있았고 우리만 꼴찌로 산 언저리에서 죽겠다고 하고있었으니까. 그때 함께 오르던 외국인 커플이 씹으라고 준 코카잎과 가이드의 도움이 아니었으면 우린 포기했을지도모른다. 어떻게 소들은 그 높은데서 풀을 뜯고 있는지 신기할 따름이었고 지지부진한 우릴 보며 호수에서 내려오는 외국인 여행객들은 5분밖에 안남았다고 힘내라고 응원해줬다. 모두 너무 감사하다.

결국 한시쯤 꼴찌로 호수에 도착. 도착하니 비가와 안개가 껴있었지만 그래픽같은 호수 모습에 넋놓고 쳐다보기만 했다. 20분 후 내려가야해서 사진찍고 요거트먹고 숨을 좀 돌렸다. 못보겠구나 싶었는데 이렇게 봤다는게 꿈만같았다.

하산길은 너무나 쉬웠다. 두시간만에 버스탄 곳까지 내려왔으니까. 오르막에선 열걸음만 걸어도 숨이 찬데 내리막길과 평지는 많이 걸어도 숨이 차지 않아 좋다. 그치만 내려오는 길엔 비와 우박이 떨어져 몸이 좀 추웠다.

이번에 69호수 트레킹을 하며 많이 알게됐다. 나와 마르꾸스 둘다 폐가 약하다는것과 앞으로의 일정에서 트레킹투어는 심각하게 고려해야겠디는 점이 가장 컸다. 가뜩이나 산소가 부족해 숨을 못쉬니 폐에 무리가 가고 조금만 올라도 쉬어야해서 다른 사람들과 시간차도 많이 났다. 가이드와 함깨 오른 사람들이 없었다면 우린 안데스산맥 어딘가에서 조난당했을지도 모른다.

몸이 만신창이가 돼서 버스에 탔다. 다시 두시간 반을 달려 와라스에 도착했고 하루종일 제대로 막지 못한 우리는 숙소에 돌아와 씻은뒤 오토바이를 타고 광장 인근 피자집으로 향했다. 트레킹 할때 하와이안 피자가 너무 땡겼기땜에 둘이 피자랑 샐러드 시켜먹고 나와선 약국에 들려 감기약을 샀다. 어딜가나 현지약을 먹어야 효과가 좋기땜에 증상을 말하고 처방받았다.

69호수 트레킹을 하고나니 머리속 생각과 기억들이 바로 포맷된 느낌이다. 어제 숙소에 도착했을땐 너무 춥고 몸이 아파서 따뜻한물로 씻으니 한결 나았다. 씻고나니 여긴 어디 나는 누구란 생각이 들었다. 하루종일 둘다 10년은 늙어버린 느낌이었다.

그래도 여기서 이렇게 트레킹을 해본건 잊을수없는 강렬한 순간이다. 거짓말같이 맛진 풍경들은 살면서 처음 보는 것들이었다. 이제 내일은 와라스를 떠나 쿠스코로 간다. 푹쉬고 재정비해서 다시 떠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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