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읽기 :
http://www.hani.co.kr/arti/SERIES/56/652655.html
이렇게 흘러갈 것이라고, 다들 알고 있었던 것일까? 세월호 사태가 넉 달의 소용돌이 끝에 결국 유민 아빠의 애처로운 투쟁으로 모아지는 모습을 보면서 착잡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잊지 않겠다’고 그렇게들 다짐하더니, 결국 우리도 세월호를 침몰시킨 자들과 별반 다를 바 없는 무능하고 무책임한 시민들이라는 자책감이 고개를 쳐든다. 정말 이렇게밖에 될 수 없었던 것일까? 나는 세월호 싸움이 특별법의 기소권과 수사권 문제로 형해화될 줄은, 그마저도 저들이 저렇게 막무가내로 버티고, 한편으로는 조롱당할 줄은 정말 몰랐다. 내가 지금껏 3년간 밀양 송전탑 싸움에서 겪었던 일련의 과정이 세월호와 너무나 비슷해서 지켜보기 괴롭고, 허망하다.
밀양 송전탑 사태는 여전히 그 실체를 아는 사람보다는 모르는 사람이 더 많지만, 세월호야말로 온 국민이 수백명의 목숨이 어떻게 죽어가는지를, 누가 그들을 죽게 만들었는지를 지켜보았으니, 그 길은 너무 분명하지 않았던가? 그리고 저들이 무슨 이유로 이 사태를 왜곡하고 국민들의 시선을 이리저리 변두리로 끌고 다니는 것인지를 모두 다 알지 않는가. 경찰이 6천의 병력으로 금수원에 진입할 때 거기에 유병언이 있으리라고 기대했던 국민이 얼마나 될까? 체포된 유병언의 큰아들에게 수갑도 채우지 않은 채 경찰이 수건으로 얼굴의 땀을 닦아주는 시시티브이 영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는 사람은 또 얼마나 될까?
다들 세상일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를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세상을 잘 아는 ‘애어른’들이 너무 많아서 세월호의 진실은 결국 이 지경까지 온 것이고, 아직도 세상 물정을 모르는 사람들, 알지만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들이 지금 광장으로 나오고, 함께 밥을 굶고 있는 것이다.
세월호를 이렇게 보내고 나면 우리에게 무엇이 남을까. 세월호까지 이렇게 보내고 말아야 하는 것일까. ‘한국전쟁 이후 최대의 사건’이라면, 국가와 사회의 존망에 연루되는 중대한 사태라면, 그다음은 어떤 길이 되어야 하는지를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사회가 존립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신뢰가 유지되기 위해, 공적 준칙과 제도가 가장 위급한 순간에 최소한의 기능이라도 할 수 있도록 만드는 길이 어떤 것인지를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해방공간에서 반민특위가 무너진 뒤로부터 우리가 지난 60여년을 이렇게 살아온 것이라면, 세월호 특별법이 이렇게 허물어져버린 뒤에 우리는 앞으로 어떤 나라를 살아가야 할 것인지를 지금 질문해야 한다.
‘장난감을 고를 수 있음에도 환갑이 넘도록 엄마에게 떼쓰는 사람들.’ 호남 최초의 새누리당 국회의원 당선자로 기세가 등등해진 이정현이 대통령의 결단을 요구하는 야당을 향해 뇌까린 말이라 한다. 그 말이 진담이든 실언이든, 야당을 그런 요청으로 이끌었던 세월호 유가족과 국민을 향해 던져진 것임은 누구나 알고 있다. 세상을 다 아는 듯 자신감에 가득 찬, 이정현 같은 자들, 그리고 그 반대편에서 어떤 일이든 체념부터 하는 자들이 세월호를 침몰시켰다.
1975년 장준하가 살해당했을 때, 함석헌은 이렇게 썼다. “허망에 직면한 마음의 취할 길은 둘뿐이다. 자신이 허망해지든지, 그렇지 않으면 그 허망에 목숨을 잊고 대들든지. 허망에 무엇으로 대드는가? 무기는 단 하나, 생각함!”이라고.
‘허망함에 대드는 생각함’은 지금 우리에게 광장으로 나올 것을 요구하고 있다. ‘장난감을 고를 수 있음에도 환갑이 넘도록 엄마에게 떼쓰는’ 천진함이, 허망함에 굴복할 수 없는 자들의 순진한 정의가 우리를 구원할 것이다.
이계삼 <오늘의 교육> 편집위원
'스크랩 > 신문기사 및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김기덕, 베니스영화제서 세월호 언급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0) | 2014.08.29 |
---|---|
[칼럼/한겨레] 유민 아빠께 / 김중미 (0) | 2014.08.28 |
[스크랩/딴지] 칼럼. 여행해보라 (0) | 2014.08.23 |
[기사/한겨레] 유가족 외면한 박 대통령, 새누리 당원들과 1주년 오찬 (0) | 2014.08.19 |
[기사/딴지] 범우시선 28호 - 딴지일보 정치 사회 (0) | 2014.08.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