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금요일, 하동으로 가는 길 내내 설렘 반 두려움 반에 잠을 못이뤘다. 찜질방에 도착해서도 다음날부터 3일간 지리산 속을 누빈다는 생각에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도 못하고 두시간도 눈을 붙이지 못했다.
토요일 새벽, 부지런히 찜질방에서 나와 의신마을로 향했다. 1년만에 다시 온 의신마을, 대성골 좋은 분들, 맛있는 음식에 힘을 받아 부지런히 음양수를 향해 올랐다. 목표지점인 장터목까지는 작년에 왔던 길이기 때문에 더 쉽기도, 더 어렵기도 했다. 그렇지만 김광석 아저씨가 불러주는 노래에 힘을 얻고 음양수를 마시며 기어코 장터목까지 도착했다. 대피소에선 또 잠이 안왔다. 내일은 좀 나을거야.. 천왕봉 다녀오면 내려가는 길이니 쉬울거야.. 그렇게 위안삼으며 또 억지로 눈을 붙였다. 새벽 세시에 일어나 천왕봉을 향해 떠나야 한다는 두려움과 함께.
일요일 새벽, 세시 반 동이 트기 전 천왕봉을 향해 출발했다. 구름끼고 스산한 날씨에 기적적으로 일출을 보고 연하천 대피소를 향했다. 이날 살면서 처음으로 능선이란걸 제대로 타봤다. 봉우리를 넘고 또 넘으면서 정신은 안드로메다로.. 내가 살아서 내려갈 수 있을지 두려움이 밀려들었다. 대피소 10km, 8km.. 3km 점점 줄어드는 숫자도 반갑지 않았다. 언제부턴가 정신이 없어진 채로 발만 움직이고 있었다. 연하천 대피소에 도착할쯤엔 도저히 이 종주를 못해먹겠다 싶었다. 그냥 다음날이 되면 노고단말고 제일 빠른 코스로 하산할 생각을 한채 잠이 들었다. 바로 내려간다고 생각해서 그런지 잠은 꽤 잤다.
다음날, 나도모르게 새벽 다섯시에 눈이 떠졌다. 어제 자기 전 아침 8시에 가장 빠른 하산코스(2시간)로 내려가자 약속했지만 뭔가 모르게 아쉬웠다. 다리는 지끈지끈거리지만 노고단까지 10.9km 남은 상황에서 종주를 그만둔다는건 아쉬웠다. 그래서 친구를 깨워 여섯시에 노고단을 향해 급출발.. 사실 여기엔 위에 사진과 다른 글 하나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아직도 내 마음에 맴도는 두 글귀는 따로 기록해둘 예정. 그 글의 힘으로 우린 노고단 종주에 성공했고 이렇게 꿈만같이 서울로 돌아왔다. 3일간의 여정은 눈을 감고도 그림처럼 펼쳐지지만, 블로그에 하나하나 기록해둘 생각이다.
3년, 아니 300년같은 3일이었다. 예전에 그런 이야기가 있었던 것 같다. 어느 나무꾼이 산에서 노인들이 바둑두는걸 보다 내려와보니 세상이 몇세대 후로 훌쩍 흘러가버려있었다는. 어제 구례로 내려와서 내가 딱 그 느낌이었다. 세상 모든건 다 그대로인데 나 혼자 수백년을 통과해온 느낌이었다. 그리고 중요한건 아직도 내 영혼은 지리산 피아골~돼지령 언저리에 남겨져있다는 것. 난 분명 그걸 느꼈다. 그곳에서부턴 몸으로만 내려왔을 뿐이고 정신은 지리산 그자리에 머물러있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이렇게 집에 돌아와 글을 쓰는 지금도 내 영혼은 지리산 언저리에 있다. 어딘가에 영혼을 두고 온 기분이 이렇게 좋은건지 몰랐다. 지혜를 품은 산에 영혼을 두고 다시 서울로 왔으니 새롭게 영혼을 만들어 갈 일만 남았다. 새로운 인생의 문이 열린 셈이다. 지리산이 나에게 준 '정신'으로 난 또 새로운 길을 만들어 갈 것이다.
.. 다시 새로운 시작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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