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왜 이제야 널 만난거니 "
영화나 드라마 속 사랑에 빠진 연인들을 통해 종종 만날 수 있는 대사다. 보통의 경우 사람에게 이 말을 하지만 난 '산'을 갈때마다 이걸 속으로 중얼거린다. 왜 26살이 되어 산을 만난건지.. 산을 몰랐던 시절들이 너무나 안타깝다. 이 세상을 조금 더 일찍 만났다면 어땠을까라는 생각도 든다. 주변에 산을 좋아하는 친구가 별로 없어서 많은 사람들이 왜 산에 가는지 의아해한다. 어차피 내려올걸 뭣하러 올라가냐고 물어본다. 그렇게 물어볼때마다 할말이 없었는데 어제 불암산에서 내려오는길에 문득 한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1년전부터 본격적으로 '돈'과 거리두기를 시도했다. '나'가 중심이 아니라 '돈'이 중심인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정말 '돈'을 통해서만 행복할 수 있는지 의심이 들기 시작했고 '돈'으로 환산된 것들이 행복의 척도라 할 수 있는지 회의가 들었다. 그때 '산'이 날 안아줬다. 필요한건 오직 너 자신임을 알려줬다. 산을 가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산을 올라갈땐 아무것도 필요가 없다는걸. 돈이 많건 적건 그저 자신의 몸 하나만으로 올라간다는 걸 말이다. 편법쓰지 않고 모두가 노력한 만큼 오를 수 있는게 '산'이다. 그리고 좌절과 포기를 이겨낸 사람들을 안아주는게 '산'이다.
거기에 더해 산에 오르는 건 아주 원초적인 행복감을 준다. 산에 올라갈 땐 뭐든 맛있다. 올라가며 중간중간 마시는 물은 꿀맛이다. 평소에 물을 많이 마시지 않지만 산에서 마시는 물은 생명수처럼 달디달다. 물도 이렇게 맛있으니 산에서 식사로 먹는 간단한 도시락은 말할 필요가 없다. 온몸을 움직여 올라간 뒤 먹는 밥에 매번 감탄한다. 이렇게 밥이 맛있다니.. 이렇게 행복하다니.. 행복이 별게 아니라는 말을 산에서 제대로 느꼈다. 배고픈 순간 자연 속에서 허기진 배를 채우는 건 아주 기본적인 기쁨인 것 같다. 식욕이 없는 분들은 산에 가는걸 추천한다. 산을 올라가는 과정에서 내가 식욕과 몸의 고됨을 느낄 수 있는 살아있는 존재란 걸 느낄 수 있다.
마지막으로 '산'은 인생을 가르쳐준다. 매번 다른 산들을 갈때마다 두려움과 조바심이 다가온다. 여긴 어떻게 갈지 그리고 어떻게 내려올지 갑갑하다. 하지만 한발 한발 앞으로 가다보면 분명 끝이 있다. 바로 그걸 배운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길도 결국 한발씩 움직이면 그만큼 나는 성장한다는 것을. 그리고 그 과정이 나의 인생을 만든다는 것을. 그래서 자신감도 생기고 용기도 생기는 것 같다. 산에 다녀오면 움츠러져있던 마음이 다시 힘을 얻고 새로운 시도를 하고 싶어 진다. 여기에 산은 '겸손함'까지 가르쳐준다. 내려올때까지 조심 또 조심해서 정신을 집중해야 무사히 내려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자만하고 산을 탔을 땐 더 어려움을 겪는다. 역시 사람은 겸손해야 된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26년만에 만난 '산'이지만 늦게 만난 만큼 절대 놓지 않을거다. 내가 나태해지고 유약해질때마다 산이 날 잡아주니까. 돈이 없어도 행복할 수 있는 경험, 나를 이겨내는 경험, 그리고 나를 만나는 경험, 그게 '등산'인 것 같다.
* 올 여름, 지리산 종주를 생각해두고 있다. 벌써부터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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