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나의 힘/영화예찬

[단상] 영화는 자기 합리화를 위한 도구가 아니다.

멜로마니 2017. 2. 21. 11:07



영화는 자기 합리화를 위한 도구가 아니다.


네이버에 로그인하면, 메인에 내가 구독하는 신문들의 기사가 뜬다. 자연스레 하나하나 읽다가 한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김민희, 홍상수... 영화같은 삶의 주인공"이라는 제목이었다. 보자마자 제목이 별로란 생각이 들었다. "김민희, 홍상수... 홍상수 영화같은 삶의 주인공"이라는 표현이 딱이다. 기사 내용이 궁금해져 읽어보니 베를린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김민희의 이력과 홍상수 감독의 이력이 정리되어 있었다. 어찌해서 영화같은 삶의 주인공이란 제목을 붙였는지는 모르겠다. 기사 전체가 아닌 한 부분만이 감독의 불륜과 그로인한 파장을 설명했기에 조회수를 올리기 위한 제목일 뿐이란 생각이 든다.


홍상수 감독이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가진 감독이라는 점은 확실하다. 나역시 그의 초기작을 보며 신선한 충격을 받았고, 이후 꾸준히 그의 작품을 보아왔다. 현실에서 만날 수 있는 찌질한 남자들을 영화를 통해 처음 알게됐다고 해야할까.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1996), 강원도의 힘(1998), 오! 수정(2000), 생활의 발견(2002),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2004), 하하하(2009) 까지. 하지만 그 이후의 작품은 더이상 보고싶지 않아졌다. 아니, 더이상 알고싶지 않아졌다. 계속 돌림노래처럼 반복되는 그의 이야기가 이제 별볼일없게 느껴진다. 어떠한 감흥도 느껴지지 않는다. 남자가 여성에게 접근해서 어떻게든 한번 자보고 싶어하는 자조적 독백이 이젠 지겹다. 그래서 가끔 홍상수 영화를 좋아한다는 남자들을 만날때면 그 사람들 역시 영화 속 남자 주인공같은 사고를 하고있진 않나 의심이 든다. 내면적 고통, 불안, 번민에 직면해 성찰하기 보다는 여성이라는 타자를 통해 자위하듯 위안받고 그 순간을 모면하려는 찌질한 한국남자를 보는 것 같아 짜증이 밀려든다. 현실에서도 이런 남자들을 수없이 만나는데 왜 내가 홍상수 영화를 통해 다시 한 번 이 남자들을 봐야하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하하하' 이후 그의 작품을 영화관에서 한번도 보지 않았다.


홍상수는 자신의 영화다. 그리고 그의 영화는 홍상수다. 나에게 홍상수라는 인간은 딱히 알고싶지도, 그다지 매력적이지도 않다. 그가 부인과 딸에게 일방적으로 이혼을 통보하고 불륜을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는 모습에서 생각 이상으로 진부하고 뻔한 사람이라는 걸 느꼈다. 사랑의 무게감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저렇게 비겁한 이별을 하지는 않을 것이라 느꼈다. 자신의 감정과 욕망이 제일 중요하기에 수십년을 함께해온 부인에 대한 마지막 배려는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영화감독이기 이전에 참 뻔한 인간이다. 자기가 가진 비겁함, 이기심, 미성숙함을 그럴듯하게 포장하는 인간. 그가 진정한 자기 성찰을 하지 않는다면 차기작 역시 지금과 같을 것이다. 모두 자기 합리화를 위한 도구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