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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정책] 걷기예찬 - 다비드 르 브르통 (김화영 옮김)

멜로마니 2014. 7. 4. 00:48



걷기예찬 │ 다비드 르 브르통 │ 김화영 옮김 │ 현대문학




일년에 꼭 한번쯤은 읽어보는 애정어린 책들이 있다. 나의 경우엔 후지와라 신야의 책들, 장 그르니에 선집 그리고 다비드 르 브르통의 걷기예찬이 이에 해당한다. 모두 에세이와 산문의 형태라는 공통점이 있어서인지 부드럽고 은은하게 그만의 향기를 뿜어낸다. 그래서 매년 한번쯤은 그 향기에 젖어있곤 한다. 걷기예찬의 경우 처음 읽었던 2008년부터 프랑스어를 전공하고 졸업을 앞둔 지금까지 계속해서 읽는 책이다. 지금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항상 내 삶을 함께 할 애정어린 책이기도 하다.


걷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책 속에 담긴 '걷기 미학'에 한껏 빠져들 것이다. 걷는다는 아주 기초적이고 단순한 활동이 얼마나 인간다움을 보여주는지, 그리고 우린 거기서 어떻게 세상을 만나고 아름다움을 마주하는지를 알게 될 것이다. '몸'에 큰 관심을 갖는 저자 '다비드 르 브르통' 교수는 시대를 넘어 걷기를 동경했던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책속에 담아낸다. 저마다 다른 이유로 걷기에 몰입한 사람들, 그리고 걷기를 넘어 도보여행에 나선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보고 있으면 읽는 나마저 열정과 흥분이 되살아나는 경험을 하게 된다. '걷기'라는 단순한 행동 속에 움튼 열정과 실천의식이 아름다움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 인간은 흔히 자아의 변두리에 내던져졌다가 중력중심을 회복하기 위하여 걷는다. 한발 한발 거쳐가는 길은 절망과 권태를 불러일으키는 미로이기 쉽지만 지극히 내면적인 그 출구는 흔히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시련을 극복했다는 느낌 혹은 희열과 재회하는 순간이다. 수많은 발걸음들에 점철되어 있는 고통은 세계와의 느린 화해로 가는 과정이다. 걷는 사람은 낭패감 속에서도 자신의 삶과 계속 한몸을 이루고 사물들과 육체적 접촉을 유지한다는 점에서 행복하다. 온몸이 피로에 취하고, 다른 곳이 아닌 바로 저곳으로 간다는 보잘것없지만 명백한 목표를 간직한 채 그는 여전히 세계와의 관계를 통제-조절하고있다. 물론 그는 방향감각을 잃고 있기도 하지만 아직은 알지 못할 어떤 해법을 찾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리하여 걷기는 하나의 통과의례 같은 것이 되어 불행을 기회로 탈바꿈시킨다. 인간을 바꾼다는 영원한 임무를 다하기 위하여 길의 연금술이 인간을 삶의 길 위에 세워놓는다. " (256p)


분명 걷기는 '인간다움'을 찾기 위한 행동이다. 온몸으로 세상을 마주하고 정신과 몸이 뻗어나가는 경험, 그것이 '걷기'인 것이다. 앞에서 밝혔듯 다비드 르 브르통은 이렇게 걷기예찬을 하는 동시에 걷기를 예찬했던 수많은 애호가들을 책속에 녹여낸다. 그래서 우리에겐 키에르 케고르, 칸트, 니체, 베르너 허조그, 루소 등 수많은 동행자들이 있다. 그렇기에 너무나 단순해서 평소 생각해본 적 없던 걷기를 그들의 시각으로 새롭게 바라보고 그 매력을 만나볼 수 있다. 지금 내가 서있는 이 곳이 도시여도, 혹은 작은 방이어도 아니면 넓게 바다가 펼쳐진 해변이어도 좋다. 걷는다는 행위는 그 순간의 세상과 나의 호흡이므로 매순간 그 색깔은 수만가지를 가질테니까.


매년 읽는 책이지만 올해엔 또 새로운 문장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만큼 내 경험도 생각도 변했다는 뜻일테다. 지난해 짧게나마 도보여행의 즐거움을 맛봤기에 올해엔 책 속 여행담이 더욱 내 이야기처럼 다가왔다. 그리고 의무와 피곤에 찌들어 있을 때, 인간이 아닌 기계와 같이 살고있다는 우울함에 빠졌을때도 걷는 순간 만큼은 분명 살아있는 존재임을 책을 통해 확인하고 위로받을 수 있었다. 그래서 다비드 르 브르통이 들려주는 걷기 이야기는 내 안에 잠들어있던 인간다움의 욕망을 깨워줬다. 마냥 걷는 것을 좋아하는 것, 그건 인간다움에 대한 갈망임을 알게해 준 것이다. 시간이 지나 그 소중한 깨달음이 다시 잊혀져 갈때쯤 난 다시 걷기예찬을 꺼내들고 행복한 사색에 잠길 것이다. 그리고 맘껏 세상을 향해 걸음을 내딛을 것이다. 걷기 만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