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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신문] 한겨레 '과거에서 구원의 희망을 찾는 프루스트적 시선 ' - 강신주

멜로마니 2013. 8. 26. 20:33

 

 

 

 

 

 

 

기사 읽기 :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60082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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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기 위해서 어느 순간 우리는 무엇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자각해야만 한다. 자기 삶을 자신의 신념과 이상에 따라 살지 못하고, 맹목적으로 살고 있다는 것을 느끼는 것이다. 남들이 결혼을 하니까 자신도 결혼을 하려고 하고, 남들이 직장에 다니니까 자신도 직장을 다니고, 남들이 투표를 하니까 자신도 투표를 하고, 남들이 스마트폰을 사니까 자신도 스마트폰을 사고 있을 뿐이다. 어느 시대에 태어났어도 반드시 살아내야 할 나만의 삶은 없는 것일까? 이런 고민에 이르렀다면, 드디어 우리는 길들여진 자신을 넘어서 자신에게 숨겨진 야성에 주목하게 된 셈이다. 누구의 제스처를 흉내내는 것이 아니라 나만의 제스처를 찾으려는 열망은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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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목에서 <일방통행로>에 등장하는 강력한 구절 하나를 읽어보자. “생각된 대로 표현된 진리만큼 궁핍한 것도 없다. … 소동에 의해서든 아니면 음악에 의해서든 또는 도움을 요청하는 외침에 의해서든 진리는 화들짝, 돌연 일격을 당한 듯 자기 침상에서 깨어나길 바란다. 진정한 작가의 내면에 갖춰져 있는 비상경보기의 숫자를 다 헤아릴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그리고 ‘집필한다’는 것은 그런 비상경보기를 켠다는 것과 다름없을 것이다.” 자발적 기억은 진리를 왜곡하기 쉽다는 프루스트적인 통찰이 분명해지는 구절이다. 책을 보면서 진리를 탐구하려고 해도, 진리가 우리에게 곧바로 도달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진리는 비자발적인 것으로 하나의 충격처럼 찾아드는 법이다. 숙소에 새어나오는 가스 냄새를 맡으면서 유년 시절 가스 중독으로 죽을 수도 있었던 경험이 엄습한 사람만이, 지금이 어떤 상태인지를 직감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이제야 알겠다. 왜 과거에 구원의 희망이 있는지. 왜 프루스트나 베냐민이 유년시절이나 과거에서 희망의 불꽃을 점화시키려고 했는지. 나아가 왜 우리가 경험을 결코 두려워해서는 안 되며, 그것에 정직하게 직면해야 하는지. 모든 진리를 그 순간 직접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때로 진리란 땅속 깊은 곳에 묻어둔 씨앗과도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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