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신문기사 및 칼럼

[스크랩] 포옹(한겨레 신문-오피니언.2012.04.10)

멜로마니 2015. 2. 11. 20:44

세상읽기   혜민(미국 햄프셔대학 교수)

아침에 따뜻하게 포옹을 해 주면 하루 동안 받게 될 스트레스로부터 정신적 보호막을 쳐준다는 것이다

혹시 이런 말 들어봤는가? 누군가가 나를 아주 따뜻하게 안아주면 나의 생명이 하루 더 연장된다는 말. 물론 실제로 그런지 아닌지 확인해볼 방법은 없겠지만 아마도 어떤 의미로 이런 말이 생겼는지는 다들 금방 이해할 것이다. 살면서 세상에 치여 상처받고 힘들 때 누군가 나에게 왜 힘든지 그 이유를 구구절절 논리적으로 설명해주는 것보다, 그냥 아무 말 없이 다가와 따뜻하게 안아주는 포옹이야말로 더 큰 치유의 효과가 있는 것 같다. 너의 아픔을 내가 대신할 순 없겠지만 그래도 네 편에 서서 이 힘든 순간을 내가 도망가지 않고 함께하겠다는, 몸으로 할 수 있는 가장 따뜻한 제스처가 포옹이다.

처음 미국에 왔을 때 나는 서양 사람들의 인사 방법에 익숙해지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머리를 공손히 숙이면서 하는 우리식 인사가 아니고 고개만 살짝 끄덕거린 후 “헤이”라고 말하면서 걸어가는 친구 간의 격식 없는 인사부터, 악수를 하되 그냥 살짝 손만 잡는 것이 아니고 상대방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미소와 함께 힘있게 악수하는 법을 배워야 했다. 하지만 여러 인사 방법 중에 나에게 익숙해지는 데 가장 오랜 시간이 걸린 것이 사실 포옹이었다. 특히 승려가 되고 난 뒤에 두 손을 모아 합장 인사를 하는 것이 아니고 두 팔을 쫙 펴고 누군가를 껴안는다는 것이 왠지 계율에도 어긋날 것 같았고 그 무엇보다도 한국 남자로서 그냥 좀 많이 어색했다. 그런데 알다시피 인사라는 것이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다. 헤어질 때 상대는 포옹의 제스처를 취하는데 그냥 악수를 하자고 손만 달랑 내미는 것도 상대를 당황하게 만들고 나와 그 사람 사이의 거리를 의도적으로 그어놓는 듯한 다소 무례한 행동이었다. 시간이 좀 지나다 보니 살면서 어느 순간부터는 자연스럽게 친한 친구나 동료와 포옹을 주고받게 되었는데, 신기하게도 처음의 어색함은 포옹을 하고 나면 매번 사라지고 그 빈 공간은 유대감, 친밀감, 그리고 따스한 행복으로 채워졌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포옹이 실제로 우리 건강에 상당한 이익을 준다는 점이 과학적으로 증명이 되었단다.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대학의 앤서니 그랜트 심리학 교수는 포옹이 스트레스에 반응하면서 분비되는 코르티솔이라고 하는 호르몬을 낮추어 병균으로부터의 면역성을 강화하고 혈압을 내려주며 심리적 불안이나 외로움을 감소시키는 영향이 있다고 발표를 했다. 또한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학의 캐런 그레원 교수에 의하면 아침에 부인이나 남편을 20초 정도 포옹해주고 손잡아주면 그렇게 하지 않는 부부에 비해 똑같은 스트레스를 받아도 절반 정도만 몸이 반응한다고 한다. 즉 아침에 따뜻하게 포옹을 해주는 것이야말로 하루 동안 받게 될 스트레스로부터 정신적 보호막을 쳐주는 놀라운 작용을 한다는 것이다.

종교인으로서 나도 종종 그런 보호막을 쳐주는 일을 하게 된다. 지금도 생각나는 여성 독자가 계신데, 저번달 내 책 사인회 때 사인을 받는 도중 울먹이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스님, 최근 두달 전에 애들 아빠가 갑자기 사고로 세상을 떠났어요. 애들 둘 키우고 있는데 왠지 스님을 만나뵈면 마음이 진정이 되고 위로를 받을 것 같아서 아침부터 기차를 타고 이렇게 올라왔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나 그분을 따뜻하게 안아드렸다. “앞으론 조금씩 괜찮아질 거예요. 애들 아빠를 위해선 승려인 저와 함께 기도해요.” 흐느끼시는 그분을 안으며 조용히 다짐했다. 만인에게 위로와 용기를 줄 수 있는 마음 따스한 종교인이 되자고. 또 나의 포옹이 필요한 분이라면 언제든지 인색하지 않고 기꺼이 안아드리자고.                   - 한겨레 신문(오피이언. 2012.04.10) -

출처 : 지리산대성골그집
글쓴이 : 장재영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