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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철학은 '물벼락'이다! : 철학자와 하녀 - 고병권

멜로마니 2014. 7. 20. 12:39




철학자와 하녀

고병권 │ 메디치 │ 2014. 05



'철학'만큼 우리 삶에서 멀게 느껴지는 단어도 없을 것이다. 이 단어를 떠올리면 생각나는 수많은 철학자들, 그리고 그 사상들은 그저 하나의 지식과 교양쯤으로 간주되는 경우가 흔하다. 그래서 시중엔 수많은 철학책들이 판친다. 자기개발서 못지 않게 낯익은 철학자의 이름을 빌려 교양을 파는 책들 말이다. 철학은 결국 '인간'에 대한 학문인데 단순히 하나의 지식으로 전락해버리는 건 진정한 의미에서의 철학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진짜 철학은 무엇일까, 그리고 철학은 인간에게 무엇을 전하는 것일까. 고병권씨는 책 '철학자와 하녀'를 통해  이 물음에 빼곡히 답을 내놓는다. 있는 그대로의 삶을 대면하고 나를 절망케한 그 무엇을 알아가는 것, 그래서 현재 내 삶이 지옥일지라도 주어진 것들로 부터 스스로 새로운 전환을 맞이할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 그것이 철학이라 말을 한다. 철학은 단순히 위안과 위로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는 철학의 의미가 '후려치는데' 있다고 말한다. 과거와 미래에 매달려 현재를 살아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타인의 힘에 휘둘려 자신의 욕구조차 모르고 사는 사람들에게 철학은 차가운 물 한바가지를 끼얹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책 속엔 그 이야기가 이렇게 담겨 있다.


철학이란게 단지 그런 지식과 자격증에 대한 이름이라면 나는 언제든 그 이름을 버릴 준비가 되어 있다. 내가 사랑하는 철학, 내가 고마움을 느끼는 철학은, 누군가의 표현처럼, 언제나 내 정신에 찬물 한 바가지를 끼얹는 그런 것이었다. 그 물 한바가지를 뒤집어쓰고서야 나는 삶을 다시 볼 수 있었다. 나 역시 안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는 정서들에 머리채가 잡혀 이리저리 휘둘려 살았고, 바깥의 스펙터클한 풍경에 눈이 팔려 삶의 소중한 것들을 소홀히 해왔다. 그나마 내가 이렇게라도 살아가는 것은 때로는 책 속에서 때로는 책 바깥에서 내 정신의 등짝을 후려쳐준 이들 덕분이다. 그 경험이 내게는 철학이다. 이 책을 읽는 당신에게도 철학이 그런 친구이기를 바란다. 10 11


우린 어제보다 더 빨라진 오늘을 살고 있다. 내가 뭘하는지도 모른채 어느새 하루가 훌쩍 흘러있다. 살아남기 위해 정신없이 살아내는 과정 속에선 나를 살펴볼 여유조차 없다. 이렇게 살아내는게 맞는 것인지, 아니면 내가 뭘 먹고싶고 뭘 하고싶은지도 모른채 나이를 먹는다. 먹고 사는 일에 급급하니 '나'라는 사람에 대해 생각해 본 적도 없다. 결국 다수가 좋아하는 것, TV 속의 환상, 풍문거리를 위안삼아 하루하루를 보낸다. 저자는 이렇게 '자각'하지 못하는 삶이 철학을 만나면 어떻게 변하는지 에세이 형식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전한다. 그리고 그의 글 속엔 니체, 루쉰, 5.18의 민주주의자들과 같은 소중한 정신을 가진 인간이 보인다. '자유'가 무엇인지 알았던, 그리고 자신을 들여다보고 그것에 충실하게 살았던 사람들 한명 한명이 담겨있는 것이다. 철학과 자유라는 단어가 막연하게 느껴지는 사람이라면 그의 글은 분명 잊고 있던 인간다움이 무엇인지를 느끼게 해줄 것이다.


이 책이 무엇보다 와닿았던건 저자의 애정어린 '눈 맞춤'때문이었다. 그는 다양한 삶의 현장에서 '철학'을 전하는 사람이다. 생존이라는 절벽에 놓인, 그리고 사회의 소외계층으로 밀려난 사람들에게 철학을 전할때 그는 이런 질문을 받았다고 한다. "왜 우리가 지금 여기서 철학을 공부해야 합니까?" 어쩌면 이 책은 그 질문에 대한 두툼한 답변일지 모른다. 교도소 안에서 왜 철학을 공부해야 하는지, 혹은 신체가 불편한 장애인이 왜 철학을 공부해야 하는지와 같은 질문은 평범한 사람들에게도 역시나 해당된다. 왜 굳이 철학을 해야 하냐고 물어오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그는 그들의 시각에서 고민을 듣고 진심어린 대답을 한다.


철학은 특정 분야의 지식이나 정보가 아니라, 단 하나의 지식이나 정보도 달리 보게 만드는 일깨움이라는 것 말이다. 나는 철학이 '박식함'에 있지 않고 '일깨움'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우리 삶에서 불가능과 무능력, 궁핍과 빈곤을 양산하고 규정하는 모든 조건에 맞서 분투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철학은 다르게 느끼는 것이고 다르게 생각하는 것이며 결국 다르게 사는 것이다. 나는 이것이 가난한 이들이 껴안을 수 있는 철학이며, 가난한 이들이 철학자에게 선사하는 철학에 대한 좋은 정의라고 생각한다. 9  


'돈', '힘', '정상/비정상' 등과 같은 사회의 획일적 기준에서 열외될 때, 그것에 상처받고 자조하는 대신 '저항'하고 분투하는 것, 바로 그것이 철학의 힘이다. 저자는 철학을 통해 인간 개개인이 가진 색깔이 얼마나 다채로운지 보여준다. 우린 사회와 체제가 내세우는 기준에 갇혀 얼마나 많은 것들을 잃고 산걸까. 책을 읽다보면 평소엔 의식하지 못했던 사회의 통념과 내 편견들이 보인다. 그리고 동시에 그 편협한 시각을 벗어난 무언가도 있었다. 자유, 공동체, 예술, 저항과 같은 단어가 그것이다. 독서를 끝낸 뒤에도 이 단어들이 마음을 울린다면 분명 그것은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는 신호일 것이다. '나'답게 사는 것, 그리고 '용기'있게 삶을 살아나가는 그 정신을 발견했다는 의미일테니까. 


그래서 이 책은 가려지고 덮여졌던 우리 마음 속 뜨거운 무언가를 끌어올려주는 역할을 한다. 하루하루 먹고살기 빠듯한 사람에게도, 그리고 지식욕으로 가득차 학문을 하는 사람들에게도 책 '철학자와 하녀'는 시원한 물벼락을 끼얹어준다. 그의 책에 나오는 철학은 글 속에만 머물러있는 지식이 아니다. 그렇다고 현실의 삶을 단숨에 180도 변화시켜주는 마술도 아니다. 그렇지만 그는 '나' 스스로를 돌아보는 계기를 만들어준다. 겉도는 인생을 살고 있는건 아닌지, 내가 주체가 되어 삶을 살아내고 있는 것인지를 물어오며 차가운 물벼락을 끼얹어주는 것이다. 그리고 책은 '자유'의 무게감으로 사랑하는 것을 끝까지 지켜내며 나답게 살아내고 싶다는 다짐도 하게 한다. 책 말미에서 그는 마지막으로 애정어린 조언을 전한다. 좋은 말은 좋은 말일 뿐임을, 그것이 삶으로 들어오려면 다시 내식대로 재생산되고 재창조되어야 함을 강조하는 것이다. 분명 그의 문장들은 두고두고 읽어볼 좋은 말이다. 그 좋은 말들이 내 삶에 녹아들 수 있도록 난 행동하고 살아갈 것이다. 그게 이 책의 힘이다.


by 슈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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