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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신문] “등정의 환희에 가린 실패와 좌절 보여주려했죠” - 산악영화 만드는 임일진 감독

멜로마니 2016. 10. 15. 12:23




기사 읽기 : http://www.hani.co.kr/arti/society/religious/765394.html


인간은 산을 정복할 수 없다. 인간은 그저 오래전부터 있던 산의 정상을 올랐다 내려갈 뿐이다. 인간이 정상에 올랐다고 그 산은 변하지 않는다. 인간의 것도 아니다. 그저 산일 뿐이다.


하지만 인간은 열광한다. 죽음의 벼랑에서, 남다른 용기와 인내력으로 한계를 극복하고 정상에 오른 산악인을 존경하고 박수를 보낸다. 산악 영화나 산악 다큐는 대개 그런 산악인의 기록이다. 정상에 올라 국기를 흔들고 감격에 찬 목소리로 정상에 올랐음을 전한다. 정상에 오르지 못한 산악인은 패배자다. 산에서 죽음을 맞이한 산악인도 동정의 대상일 뿐이다.


임일진(47) 감독은 산에서 숨진 산악인의 이야기를 영화에 담았다. 그가 만든 기록영화 <알피니스트>는 우울하다. 희박한 산소 때문에 숨을 가쁘게 몰아쉬다가 절명을 하고, 가파른 얼음절벽에서 추락해 온몸이 산산이 부서진 산악인의 최후를 기록했다. 이 영화는 지난 1일 울주 세계산악영화제에서 개봉돼 화제를 모았다. 영화제에서 임 감독과 마주 앉았다.


그는 스스로를 ‘도태한 산악인’이라 부른다. 한국외국어대 산악부에서 산을 배웠다. 멋진 알피니스트를 꿈꿨다. 현실은 꿈을 외면했다. 대학을 중퇴하고 일본에 갔다. 우연히 스포츠 클라이밍을 기록하는 일과 인연을 맺었다. 먹고살기 위해 카메라를 들고 산을 오르내렸다. 히말라야 원정대를 따라가 산악인의 모습을 담았다. 무게 10㎏짜리 카메라를 들고 8000m까지 올랐다. 최고봉 에베레스트를 비롯해 히말라야 고산엔 9번 올랐다. 정상 공격에 나선 대원을 기다리며, 살아 돌아오길 기원했다. 휴대한 산소통의 산소가 떨어지면 외국 원정대가 버린 산소통에 남아 있는 찌꺼기 산소를 마시며 버티기도 했다.


높은 산은 인간에게 잔인했다. 쉽게 민낯을 보여주지 않았다. 한국 산악인이 1961년 처음 히말라야에 오르기 시작한 이래 5000m 이상의 산에서 숨진 한국인은 83명이다. 해마다 한두 사람씩 산에서 최후를 맞이한 셈이다.


많이 울었어요. 발랄하고 자신있는 모습으로 출발한 산악인이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왔을 때 울음을 참으며 그들을 영상으로 기록했어요. 그들을 산에 묻고 돌아와 죄인처럼 숨죽이며 살았어요. 공중파 방송에선 그런 모습을 원하지 않았어요. 천신만고 끝에 정상에 올라 깃발을 꽂고 만세를 부르고…, 그런 성공한 산악인의 모습만 방송을 탔어요.”


임 감독은 2011년 히말라야 촐라체(6440m) 북벽을 등반하다가 목숨을 잃은 김형일씨와 장지명씨가 추락사하는 모습을 생생하게 목격했다. “정상을 400여m 남겨둔 지점에서 떨어졌어요. 80도의 가파른 경사, 그 암벽에서 탈진해 수직으로 1.5㎞ 떨어졌어요. 처참했어요.”


2013년 무산소로 에베레스트(8848m)에 올랐다가 캠프 4(8000m)에 내려와 숨을 거둔 서성호씨의 마지막 모습도 카메라에 담았다. 탈진한 상태로 하산한 서씨는 숨이 넘어가는 한계상황에서도 산소 흡입을 거부했다. “그의 의견을 존중했어요. 무산소 등정은 오를 때뿐 아니라 베이스캠프까지 무산소로 내려가야 해요. 정말 강인한 정신의 소유자였어요. 산소통을 보고 고개를 흔드는 그에게 강제로 호스를 물릴 수 없었어요. 따뜻한 물을 주자 힘겹게 마시고 잤어요. 새벽에 그는 텐트에서 깨어나지 못했어요.”

임 감독은 산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생계수단으로 산에 오른다고 말한다. “다양한 이유로 산에 오릅니다. 알피니즘을 실현하러 오르는 이도 있고, 저처럼 먹고살기 위해 오르는 이도 있어요. 그런 솔직한 이야기를 영화에 담고 싶었어요.”


그도 산에서 추락한 경험이 있다. 캐나다의 거대한 암벽 등반을 찍다가 300m를 굴러 떨어졌다. 다행히 크게 다치지는 않았다.


등정의 환희 뒤에는 죽음의 어두운 면도 있어요. 알피니스트의 내면에도 절망과 후회가 있어요. 희망을 찍으며 절망도 함께 찍고자 했어요. 어느 누구도 죽으러 가지는 않았고 당연히 등정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넘쳐 도전해요. 등반의 상업화가 만든 영웅보다는, 고산이라는 엄혹한 현실이 만들어내는 실패와 좌절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죽은 이들을 이용해 영화를 찍는다는 비난도 받았다. “유족들을 찾아가 양해를 구했어요. 비록 불편한 영상이지만 설득했어요. 그들은 산에서 숨졌지만 실패자는 아닙니다. 진심을 다해, 정성을 다해 오르다가 숨졌어요. 지금도 그들의 환한 표정이 눈에 아른거립니다.”


임 감독은 이미 산악 영화 <벽>으로, 아시아 감독으로는 처음 트렌토 산악영화제 특별상을 수상했다. 임 감독과 김민철 감독이 공동연출하고 임 감독이 촬영과 내레이션을 한 영화 <알피니스트>(제작 민치앤필름)는 울주 산악영화제에서 전석 매진됐다. 내년 1월 일반 영화관 개봉에 앞서 13일 저녁 서울 상암동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시사회를 연다.



개봉하면 꼭 볼 작품 !!!

감독님의 생각에 크게 공감한다. 작품이 너무너무 기대된다.